[특파원 시선] 6시간마다 산책시킬 수 있나요

입력 2026-08-16 07:00
[특파원 시선] 6시간마다 산책시킬 수 있나요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6시간마다 산책시켜 줄 수 있나요? 장시간 집을 비운다면 6시간마다 산책시켜줄 사람을 찾아줄 수 있나요?"

인적사항부터 시작된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심지어 6시간마다 실외 배변을 위한 산책이 가능한지까지 이르렀을 때 '쉽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유기견을 임시 보호하려고 워싱턴DC의 동물보호단체에 보낼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질문이 40개를 넘는 건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최근 10년 새 키운 반려동물들이 다녔던 병원 이름과 연락처도 신청서에 넣어야 했습니다. 때맞춰 백신을 맞추고 검진도 해주는 사람인지 전화로 확인해본다고 합니다.

평판을 물어볼 지인 연락처도 기입해야 합니다. 친구 전화번호를 넣어두고 혹시 전화가 오거든 '나쁜 사람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6시간마다 산책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사실 누가 알겠느냐만 '주중 출근 탓에 6시간마다 산책은 어려울 수 있어도 산책 주기를 최대한 짧게 하고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구구절절 적었습니다.

그래도 불합격이었습니다. 6시간마다 산책을 시킬 수 없다면 유기견 임시 보호는 불가능하니 유기묘 임시 보호는 어떻겠느냐고 짧게 답장이 왔습니다.

드디어 개와 같이 살아보나 했는데 서운했습니다. 그래도 6시간마다 산책이라는 원칙이 임시 보호 승인 기준으로 엄격히 지켜진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어떤 안도감마저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문화가 강하고, 반려동물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기준도 높은 편입니다.

반려견 중에 대형견도 많고 실내 배변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하루에 보통 4차례 정도 산책을 시킵니다.

도심 한복판에도 공원이 많은 편이라 실외 배변을 위한 산책 경로는 잘 돼 있습니다.

병원도 정기적으로 데려가는 편입니다. 다니던 동물병원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개를 산책시키다 행인과 대화하게 되는 일도 흔합니다. 산책 중인 개를 쓰다듬고 싶어 하는 행인이 많은데 대부분의 견주가 반갑게 응해줍니다.



유기견 임시 보호의 조건으로 '6시간마다 산책'을 내거는 바탕엔 이런 문화가 있습니다. 너무 엄격하지 않나 싶다가도 한 생명을 품는 일에 책임이 작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결국 '자격 미달'로 유기견 임시 보호의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유기묘 임시 보호를 신청해 곧 고양이가 집에 옵니다.

40개가 넘는 질문에 다시 답을 해 신청서를 보냈고 영상통화로 고양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인지 검사도 받았습니다.

아무 고양이나 배정해줘도 된다고 했더니, '피쉬(Fish)'라는 이름의 유기묘를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세살짜리라고 해서 사료며 물품을 다 자란 고양이에 맞춰 샀는데 착오가 있었다고, 3개월짜리 아기 고양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피쉬가 어쩌다 유기묘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희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다 좋은 집에 입양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나라에서든 길 위의 생명들이 편안하게 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도 있습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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