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외교장관회의 폐막…'호르무즈 항행·비행 자유' 촉구
"중동전쟁 심각한 우려"…미중 외교수장도 치열 외교전
남중국해·미얀마 문제도 논의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가 23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등 국제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와 중동 전쟁에서 각국의 자제를 촉구하면서 사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 등 주요국 외교수장들도 모여 아세안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상대로 외교전을 펼쳤다.
◇ 아세안 "호르무즈 통행 회복해야…중동전 외교적 해결 요청"
지난 21일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이날 발표한 최종 공동성명을 통해 "해상의 안전·안보를 유지하고 국제적 항해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와 상공 비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의거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과 항공기의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지속적인 통행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아세안은 그간 항행·비행의 자유를 강조해왔지만, 이번처럼 해협에서의 항행·비행의 자유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AFP 통신은 설명했다.
아세안 장관들은 또 이란 전쟁 격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이로 인해 아세안의 에너지·식량·민생이 타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모든 관련 당사자에게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떤 행위도 피하면서 입장 차이를 외교와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아세안 장관들은 또 회원국 간 에너지 협력을 언급했으나, 지난 5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구축이 합의된 아세안전력망(APG)이나 유사시 아세안 회원국 간 석유를 서로 공유·지원하는 내용의 아세안석유안보협정(APSA)의 실행 방안에서 진전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 미중 외교수장 회담…"시진핑 9월 성공적 방미 준비 협의"
이번 회의에 참석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지만 이를 위해 동맹국들을 희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아시아 국가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루비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미 (아시아에) 존재한다. 우리는 역할이 있으며, 우리는 동맹국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너무나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그 관계가 가능한 한 긍정적이기를 바란다"면서도 "그것이 우리 동맹국과 이 지역의 파트너, 이곳에서 우리의 존재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전날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과 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는 9월 미국 방문 성공을 위해 많은 논의를 했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양측은 이번 회담이 실무적·긍정적·건설적이었다고 인식했다"면서 "양국 정상이 달성한 중요 합의를 함께 이행하고, 정치·외교 채널의 역할을 발휘하며, 다음 단계 고위급 교류를 잘 준비해 중미의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가 실질적 진전을 얻도록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왕 주임이 최근 미국의 '부정적 언행'에 관해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미국에 중국 핵심이익 존중과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 갈등과 이견의 실질적인 통제, 중국의 정당한 우려 해결을 요구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 중국-필리핀 충돌 속 남중국해 문제도 부각
이번 회의 개막 직전부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중국과 필리핀의 충돌이 잇따르면서 남중국해 문제는 이번에도 주요 이슈로 주목받았다.
지난 20일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서 중국 해경과 필리핀군이 충돌, 필리핀 병사가 부상한 데 이어 이날도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명 바호 데 마신록 또는 파나탁)에서 중국 해경이 필리핀 정부 선박에 물대포를 쏘며 몰아냈다.
루비오 장관은 이날 "전 세계가 이를 목격했다. 이는 불안감을 주는 행위"라면서 이 때문에 미국이 동맹국과 항행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약속, 영토권에 대한 존중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건에도 올해 아세안 순회 의장국이자 회의 주최국인 필리핀의 테레사 라사로 외교장관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아세안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각국 간 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남중국해 행동강령(이하 행동강령) 마련 협상을 연말까지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라사로 장관은 "이것은 이제 정치적 의지의 부분"이라면서 "우리는 연말까지 이 행동강령 협상을 연말에 완료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징취안 필리핀 주재 중국 대사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 충돌에 대해 "양자 관계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연말까지 행동강령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우리의 의사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행동걍령이 영유권 분쟁과 같은 양자 간 다툼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얀마, 아세안과 관계 정상화 아직 멀었다"
최근 아세안과 5년여 만에 처음으로 비공식 외교장관 회의를 가진 미얀마의 아세안과 관계 개선 문제도 이번 회의에서 논의됐다.
아세안의 미얀마 특사이기도 한 라사로 장관은 이날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얀마의 합의 준수 여부에 대한 의문이 많다"면서 아세안과 미얀마 관계 정상화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밝혔다.
아세안은 미얀마 군사쿠데타 직후 미얀마와 폭력 즉각 중단 등 5개 항목에 합의했으나, 이후 미얀마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미얀마 정권 지도부의 아세안 공식회의 참석을 막는 등 관계를 단절했다.
라사로 장관은 5개 합의 항목 등 평화 로드맵의 진척도를 측정할 기준을 마련할 것이며, 미얀마 정권이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합의 불이행으로 간주하겠다고 설명했다.
올해 말 인도주의 활동을 위해 미얀마를 방문할 예정인 그는 또 아세안이 미얀마에 요구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의 면담이 성사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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