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여름에도 얼음왕국'…사계절 관광도시 꿈꾸는 중국 하얼빈
세계적 겨울축제 넘어 '365일 관광' 도전…맥주축제·아이스쇼로 관광객 유치
(하얼빈=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목도리와 장갑도 꼭 착용하세요."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일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았지만 하얼빈시 관계자는 두꺼운 롱패딩과 방한화는 물론 목도리와 장갑까지 챙겨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겨울옷을 모두 갖춰 입고 들어선 실내의 기온은 영하 13도.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등에 붙인 핫팩 두 개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매서운 냉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이곳은 눈과 얼음을 주제로 지난해 문을 연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빙설 테마파크 '빙설대세계'(氷雪大世界)다.
연면적 2만3천800㎡, 축구장 3개를 웃도는 규모의 빙설대세계는 지난 겨울 쑹화강에서 채취한 얼음 2만㎥이 투입돼 조성됐다.
실내에는 '빙설서곡', '얼음도시' 등 테마 공간과 함께 얼음 봅슬레이와 미디어아트 체험관 등을 갖췄다. 다양한 조명과 영상 연출은 한여름에도 얼음 왕국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얼음 미끄럼틀과 봅슬레이를 타며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부모들은 아이들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인공 눈발이 흩날렸다. 관광객들은 형형색색의 얼음 조각상을 배경으로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중국인 천모 씨는 "더위를 잊어보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기대 이상"이라며 "아이가 눈과 얼음 속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온 가족이 행복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1시간가량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몸속 깊이 스며든 냉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출구를 나선 관광객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붉어져 있었다.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는 하얼빈은 중국의 대표 겨울 관광도시다.
1985년 시작된 하얼빈 빙설제는 일본 삿포로 눈축제, 캐나다 퀘벡 윈터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겨울 축제로 꼽힌다.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축제 기간에는 3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지만 축제가 끝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축제장은 봄이 되면 문을 닫았고 넓은 부지는 활용되지 못한 채 비어 있었다.
하얼빈시가 꺼내 든 해법은 '사계절 빙설 관광'이었다.
사계절 내내 눈과 얼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내 테마파크를 조성한 것이다.
하얼빈시 선전부 관계자는 "우리 목표는 1년 365일 언제든 빙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며 "겨울 관광도시에서 사계절 관광도시로 바꾸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빙설대세계는 지난해 개장 이후 하루 평균 8천여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얼빈의 변화는 실내 빙설관에 그치지 않는다.
야외 공간에서는 여름마다 하얼빈 맥주 축제가 열린다.
겨울철 얼음 조형물이 들어섰던 자리는 각국 맥주와 공연, 먹거리로 가득 채워진 축제장으로 탈바꿈한다.
축제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 축제가 끝나면 이곳은 사실상 허허벌판이었다"며 "맥주 축제와 실내 빙설관이 들어선 뒤에는 여름에도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인근 공연장에서는 매일 밤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대형 아이스쇼가 열린다.
하얼빈의 역사와 문화, 중국 북방 지역의 생활상을 첨단 영상기술과 조명, 피겨 갈라쇼, 중국식 서커스로 풀어낸 복합 문화 콘텐츠다.
공중을 가르는 곡예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은 빙설 도시 하얼빈의 사계절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공연장 관계자는 "빙설 스포츠와 도시 문화를 공연으로 결합한 하얼빈의 대표 관광 브랜드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기대와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찾은 1천석 규모 공연장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실내 빙설관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연과 주변 소비로까지 연결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에 한여름에도 영하 10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냉동 설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에너지 소비도 불가피하다.
이에 관광객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운영비를 상쇄할 수 있을지가 사계절 빙설 관광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내수 확대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문화관광 소비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하얼빈의 사계절 빙설 관광도 이런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한여름 영하 13도의 얼음 왕국은 분명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겨울이라는 '도시 자산'을 사계절 산업으로 확장하려는 하얼빈의 도전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다만 관광객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막대한 운영 비용과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사계절 관광도시라는 구상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보였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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