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폭력에 맞서는 이야기"
'채식주의자' 연극 만든 伊연출가, '작별하지 않는다'도 아비뇽서 첫선
연출가 "한강 작품엔 매우 강렬한 슬픔 흐르지만 언제나 희망 있어"
(아비뇽<프랑스>=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우리는 이 작품이 세상의 폭력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이탈리아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 14일(현지시간) 저녁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카름 수도원 회랑 무대에 올랐다.
작품을 연출하고 직접 출연한 이는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동명 연극으로 각색했던 그는 이번에는 제주 4·3의 비극과 두 여성의 우정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데플로리안은 공연 직후 연합뉴스 등 한국 언론 기자들과 만나 "'채식주의자' 작업을 마친 뒤 주인공 영혜의 변화는 깊은 고독을 동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이 작품은 '연결'에 관한 이야기"라며 "사람들이 함께함으로써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은 혼자였지만 이 작품에는 우정이 있고 가족의 역사로 이어지는 연결이 있다"며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작품을 이어서 만드는 일이 매우 큰 의미를 지녔다"고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기억과 시선을 통해 더듬어가는 소설이다. 소설가인 경하가 사고로 손가락을 다친 친구 인선을 대신해 제주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간직해온 가족의 상처와 역사의 기억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낯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무대 위에 옮기기 위해 데플로리안과 인선 역을 맡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는 직접 제주를 찾아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데플로리안은 "희생자 추모관을 직접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며 긴 하루를 보냈다. 제주 풍경과 바다까지 보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에는 "매우 강렬한 슬픔"이 흐르지만 동시에 "언제나 어떤 희망이 있다"는 게 데플로리안의 해석이다. 그는 이를 두고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두 작품을 연달아 무대화할 만큼 한강의 팬인 데플로리안은 "그가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특히 매료됐다고 전했다.
그는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보다 일반적이고 제도적인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섞는 방식이 내겐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현실과 허구를 섞는 능력",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과 동시에 언어의 수준, 시적인 질감을 유지하는 능력" 역시 이 이탈리아 연출가를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한강은 지난 12일 아비뇽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국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는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시대가 변함에도 "인간들이 반복해서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피세두도 한강의 이러한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연극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며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위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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