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 "정치적 글쓰기와 내면적 글쓰기 나뉘지 않아"

입력 2026-07-12 21:47
작가 한강 "정치적 글쓰기와 내면적 글쓰기 나뉘지 않아"

제80회 아비뇽 연극 축제서 독자들 만나…노벨상 수상 후 첫 공개 활동

"작품서 보편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국 역사만 다루는 것 아냐"

"절망적 이야기 다루는 문학도 우리를 삶으로 이끌어"…즉석 팬 사인회도



(아비뇽<프랑스>=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은 12일(현지시간) "정치적 글쓰기와 내면적 글쓰기는 나뉘지 않는다"며 자신을 '정치적 작가'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 입장을 밝혔다.

한강은 제80회 아비뇽 연극 축제의 부대 행사로 마련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자기 작품 철학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 공개적인 외부 활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올해 아비뇽 연극 축제의 초청 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되면서 한강도 주요 인사로 초청됐다.

한강은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이후 사람들로부터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것인가"란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강은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는 마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것도 굉장히 정치적인 소설이고, '소년이 온다'는 사람들이 사회적 소설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제게는 굉장히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말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도 역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나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국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는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들은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전 역사에 걸쳐서 인간들이 반복해서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그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남게 되는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애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 오직 한국 역사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자신을 철학적 작가로 정의하느냐는 진행자 질문엔 "한가지 질문을 하면 다음 질문이 생겨나서 질문이란 게 끝나지 않는다. 그냥 계속 질문하는 소설들을 쓰고 있는 것 같다"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어서 질문하는 작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은 문학의 힘에 대해선 "우리가 문학을 읽으면 굉장히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우리가 느끼는 그 생생함이 우리를 삶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아주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어떤 감정을 다루는 문학이라 해도, 그 작품을 읽는 동안엔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면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가장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도 우리를 삶으로 한 발 더 이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자기 대표작들에 대한 짤막한 서평들도 남겼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이자 눈보라를 해치고 새 한 마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차갑지만 뜨거운 이야기"라고 했다.

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린 '채식주의자'에 대해선 "주인공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인간이란 사실도 거부하며 식물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라며 "저는 이 소설이 자기 파괴로 가는 소설이라 생각지 않고, 그런 결연한 의지를 끝까지 가져가는데 그것이 죽음에 다가가는 아이러니를 가진 그런 인물을 다룬 소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현재도 글을 쓰고 있다며 "쓰고 싶은 소설이 3개 있는데 저는 빨리 완성하지 못하는 편"이라며 소설 주제에 대해선 "얘기하면 신비로움이 사라지니 '쓰고는 있다' 정도로 말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강은 2018년 서울에 독립서점 '책방오늘'을 열었으나 8년 만인 지난 7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한강은 "건물이 팔리면서 세입자들이 다 나가게 됐다"며 "문 닫기 직전에 이자벨 위페르(프랑스 배우) 씨가 찾아와 손님 없는 오전 시간에 만나 이야길 나눠서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오는 15일과 16일 한국 배우 이혜영과 함께 '작별하지 않는다'의 낭독 공연을 한다. 이자벨 위페르는 이날 한강의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도 참석했다.

한강은 이날 행사에서 짧게 시간을 내 직접 '작별하지 않는다'의 일부분을 낭독하기도 했다. 행사 이후엔 즉석 팬 사인회도 가졌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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