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카보베르데, 포르투갈 식민지서 카브랄과 월드컵까지

입력 2026-07-21 07:00
[우분투칼럼] 카보베르데, 포르투갈 식민지서 카브랄과 월드컵까지

조준화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은 아프리카 축구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나라는 단연 카보베르데(Cabo Verde, 포르투갈어로는 까보베르지로 발음한다)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카보베르데는 32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대등한 경기력을 펼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구 약 60만명에 불과한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하며 카보베르데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은 단순한 스포츠 성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최근 유명 여행 유튜버들의 방문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카보베르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작은 나라의 축구 성공담만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노예무역, 디아스포라, 그리고 독립운동의 긴 역사 위에 세워진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대륙 서쪽 약 600㎞ 떨어진 대서양의 군도 국가다. 10개의 화산섬이 완만한 호를 이루며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져 있어 대서양의 초승달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나라지만, 유럽에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해변으로 유명한 휴양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섬이 원래 사람이 살지 않았던 무인도였다는 사실이다. 15세기 중반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이곳에 도착하면서 기록된 역사가 비로소 시작됐다. 이후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 제국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대서양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카보베르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르투갈 제국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의 해양 제국이었다. 1415년 북아프리카 세우타(Ceuta, 현재 스페인령)를 점령하며 시작된 제국은 1999년 마카오 반환까지 약 600년에 걸쳐 존속한 근대 세계 최장수 해양 식민제국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영토를 회복하려는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연장선에서 출발했지만, 곧 종교적 목적보다 무역과 해상 교통로 확보가 더 중요한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교황의 칙서와 스페인과 체결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포르투갈의 아프리카와 인도양 진출에 제도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포르투갈은 해안 곳곳에 페이토리아라 불리는 무역기지와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카보베르데 역시 이러한 제국 전략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상투메(Sao Tome)와 함께 아프리카, 브라질, 유럽을 연결하는 대서양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붙잡힌 수많은 노예는 카보베르데를 거쳐 브라질과 카리브해, 포르투갈 식민지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인 정착민과 아프리카인 노예, 해방 노예들이 공존하며 아프리카 최초의 크리올(Creole) 사회 가운데 하나가 형성됐다. 오늘날 공용어인 포르투갈어와 일상어인 카보베르데 크리올어가 함께 사용되고, 음악과 음식, 생활문화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융합 뒤에는 식민지배의 폭력적 현실이 존재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주민들에게 강제노동과 세금을 부과했다. 법적으로도 시민권을 가진 문명인과 권리가 제한된 토착민을 구분하는 차별적 통치체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구조는 1960년대 독립전쟁 직전까지도 근본적으로 유지됐다. 더욱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반복되는 가뭄과 식민정부의 무관심은 극심한 기근을 초래했다.

많은 주민이 생존을 위해 미국과 포르투갈, 세네갈, 네덜란드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오늘날 해외에 거주하는 카보베르데계 인구가 본국 인구보다 많은 이유 역시 이러한 역사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카보베르데는 식민지였지만 동시에 대서양 세계를 연결하는 교차로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 브라질이 만나는 공간에서 노예무역과 해양교역, 이주와 크리올 문화가 중첩되며 오늘날의 카보베르데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국제사회에 탈식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포르투갈은 제국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1951년 포르투갈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식민지를 '해외주'(Overseas Provinces)로 명칭만 변경했다. 그러나 실제 통치 방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아프리카 주민들은 여전히 시민권을 가진 '문명인'과 권리가 제한된 '토착민'으로 구분됐다. 강제노동과 차별적 사법제도가 유지됐다. 이른바 인디제나투(indigenato) 체제는 1961년에야 폐지됐다. 강제노동 역시 1962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밀카르 카브랄이다. 카브랄은 포르투갈령 기니, 오늘날의 기니비사우에서 카보베르데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스본에서 농학을 공부한 그는 토양조사를 위해 기니비사우 전역을 직접 걸으며 식민지 민중의 삶을 목격했다. 그는 1956년 기니·카보베르데 아프리카독립당(PAIGC)을 창설해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카브랄은 동시에 뛰어난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식민주의를 단순한 경제적 착취를 넘어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배로 이해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명제인 '민족해방은 곧 문화적 행위'라는 말은 이러한 철학을 집약한다. 식민지배는 땅과 자원만 빼앗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역사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해방은 식민 권력이 심어놓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문화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브랄은 식민 본국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에게 민중의 삶과 문화라는 원천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전통으로 회귀하자는 복고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국민이 형성된다고 믿었던 현실주의자였다. 서로 다른 민족과 부족 역시 독립을 향한 공동의 투쟁을 통해 하나의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카브랄은 1973년 1월 독립을 눈앞에 두고 암살당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아프리카 해방운동과 탈식민 연구 전반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발전은 외부에서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주체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논의의 중요한 사상적 원천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카보베르데 축구 역시 이러한 역사와 맞닿아 있다. 국내 인구는 적지만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 곳곳에 형성된 거대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국가대표팀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카보베르데는 작은 나라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곧 작은 역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나라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거점이었다. 포르투갈 식민주의의 변방이었으며, 크리올 문화가 탄생한 공간이었다. 또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해방 사상가 카브랄을 배출한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그들의 축구 뒤에는 수백 년의 식민지 역사와 바다를 건넌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자기 역사를 되찾고자 했던 해방의 철학이 살아 있다. 그렇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이변이나 스포츠의 감동만이 아니라 카보베르데가 걸어온 긴 역사와 그 속에서 만들어진 한 나라의 정체성 역시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



※ 본 기고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공식 입장이나 정책을 대변하지 않고,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 조준화 박사

현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영국 런던대(SOAS) 정치학 박사, 전,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창립멤버), 서울대·신한대·연세대·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 및 강사 역임, 국제정치학회·개발협력학회·한국아프리카학회 및 경기도 국제개발협력 위원 활동 역임. 아프리카 정치와 개발협력 관련 다수의 논문 및 보고서를 집필.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