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전쟁의 하청화…러시아의 '취업사기' 인력 동원
최두영 고려대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을 훌쩍 넘겼다. 전쟁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화력에서 병력의 동원과 유지를 뒷받침하는 '병력의 정치 경제'로 이동하고 있다. 전선이 교착되고 추가 징집의 정치·경제적 비용이 커질수록, 전쟁 수행국은 더 값싸고 '대체할 수 있는 병력'을 찾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인 '비용 외부화' 전략이다. 자국민 징집에 따른 정치적 반발이라는 숨은 비용을, 글로벌 사우스의 취약계층에 전가하는 구조가 작동한다.
이 구조는 국가의 병력 수요와 민간중개·불법모집망의 공급이 결합할 때 구체적인 '이동 경로'로 구현된다. 그 결과 아프리카 청년들의 러시아군 유입이 나타난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36개국에서 1천400명 이상이 러시아 측에 모집됐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핵심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모집'이라는 표현 뒤에 취업 알선을 미끼로 한 기만과 불법 중개망이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조건이 맞을 경우 이는 사실상 인신매매에 준하는 착취로 수렴한다. 노동시장에서 정보 비대칭과 빈곤이 착취의 조건이 되듯, 전쟁터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된다.
이를 단순히 '용병이 늘었다'로 요약하면 핵심을 놓친다. 지금 목격되는 것은 전쟁이 하나의 '아웃소싱 산업'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끌어오는 것은 전투병만이 아니다. 군수공장 노동자, 그리고 모집·홍보·중개를 잇는 네트워크까지 착취의 사슬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 구조는 더 정교해지고, 취업 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일상적 플랫폼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 왜 아프리카인가…전쟁 수행의 비용전가 메커니즘
러시아가 아프리카 인력을 끌어들이는 데는 두 조건이 맞물린다. 러시아 내부에서 추가 동원은 정치적 부담이지만, 아프리카 다수 국가에서는 청년 실업과 이주 욕구가 상시적 압력으로 존재한다.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러시아 취업', '직업 훈련' 같은 문구가 미끼로 던져진다. 전쟁 수행국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오해의 틈'이다. 계약서는 외국어로 제시되고, 약속은 구두로 남으며, 위험은 끝내 비공개로 처리된다.
그 끝은 '전선의 소모품'이다. 케냐 사례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AP통신은 케냐 정보보고서를 인용해, 케냐인 1천명이 일자리를 약속받고 러시아로 건너갔다가 전선으로 보내졌다고 전했다. 집계 시점과 수치의 정확성은 전시 정보의 특성상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규모 과시가 아니라, '고용 이주'의 외피를 두른 '전투 동원'이 체계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경로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기만은 어떻게 산업화하는가…디지털 모집과 물리적 구속
오늘의 모집은 포스터와 전단이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이뤄진다. 구인·유학·훈련 광고로 접근한 뒤 개인메시지(DM)에서 계약을 전환하고, 이동 이후에는 체류·숙소·문서·부채 등을 통해 선택지를 좁히는 방식이 결합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게임·커뮤니티 공간의 침투다. 보도에 따르면 디스코드(Discord) 같은 플랫폼에서 접촉한 '게이머'가 러시아군 계약으로 이어진 사례도 보고됐다. 전쟁 동원이 더 이상 폐쇄적인 정치·무장 조직의 네트워크에만 머물지 않고, 취미 커뮤니티와 채팅방으로 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쟁이 일상의 통신 인프라를 타고 흐르는 순간, 국경 통제나 치안 감시만으로는 차단이 어려워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러-우 전쟁 '17명 용병' 사건은 디지털 유인과 국내 정치가 맞부딪힐 때 어떤 파열이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로이터와 AP는 남아공 정부가 '속아 참전한' 이들 자국민을 귀환시키는 과정을 전했다. 또 이 사안에서 정치권 연루 의혹까지 불거져 국내 정치 쟁점으로 번진 상황을 보도했다. 여기서 핵심은 러시아-아프리카 간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민간 중개, 불법 모집, 준강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회색지대가 국가 간 갈등의 뇌관이 된다는 사실이다.
◇ 전투만이 아니다…군수산업의 '이주노동' 흡수
더 불편한 진실은 아프리카 인력이 전장뿐 아니라 군수 생산 시설로도 흡수된다는 점이다. 드론 등 무기 생산과 연계된 노동에 아프리카 여성들이 '직업훈련' 명목으로 모집됐다가 실제로는 무기 조립 공정에 투입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전쟁의 하청이 '총을 쥐는 손'을 넘어 '부품을 조립하는 손'까지 확장된 것이다. 제재와 인력난을 동시에 직면한 전쟁경제는 병력 손실을 외부화하는 동시에, 군수 생산의 병목까지 외부 노동으로 메우려 한다.
이 지점에서 논의는 인권 문제를 넘어선다. 군수 시설 노동 착취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인 동시에 전쟁 수행 능력의 실질적 구성 요소다. '어떤 전쟁을 지속시키는가'라는 질문 안에 이제 '누가 조립하고 누가 운반하는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아프리카 내부 후폭풍…귀환자, 불법 모집망, 거버넌스 비용
러시아는 아프리카에서 반(反)서구·반식민 레토릭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동반관계'의 언어가 실제로는 위험의 외주화로 귀결될 때 그 담론은 빠르게 마모된다. 전투 투입이든 공장 노동이든 공통 분모는 취약계층을 겨냥한 정보 비대칭이다. 계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이 강요되고, '일자리'로 시작한 이동이 '전장'으로 끝나는 순간 그것은 동반관계가 아니라 착취다. 반식민 담론이 새로운 수탈의 언어로 뒤집히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동시에 아프리카 내부에도 후폭풍이 쌓인다. 귀환자는 트라우마와 전투 경험을 함께 들고 돌아오고, 불법 모집망은 공항·이민국·민간 브로커의 부패 구조와 공생하며 뿌리를 내린다. 전쟁의 비용은 유럽 동부에만 쌓이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거버넌스·치안·노동시장에도 조용히 침전된다. 케냐가 대규모 모집 의혹을 공식 외교 이슈로 끌어올린 배경에는 이러한 국가적 비용 계산이 깔려 있다.
◇ 무엇을 해야 하나…'송환'을 넘어 '경로 차단'으로
정책의 초점은 단순한 송환 성과 경쟁이 아니라 동원의 공급사슬을 끊는 데 맞춰져야 한다.
첫째, 아프리카 각국은 불법 해외 군사 복무와 용병 모집을 처벌하는 국내법 집행을 강화하고, 수사·금융 추적을 통해 브로커의 수익 구조를 차단해야 한다. 남아공의 해외 무장활동 금지 규정이 국내 쟁점으로 비화한 사실은 법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둘째, 플랫폼 기업은 모집 광고와 직업 사기를 단순 스팸이 아니라 인신매매·전쟁 동원 리스크로 재분류하고, 광고 심사·신고 처리·계정 검증과 같은 절차를 통해 노출과 확산을 줄여야 한다. 일상적 플랫폼이 동원 통로로 활용되는 이상, 대응 기준의 재정의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셋째, 국제사회는 제재의 범위를 전투부대에만 한정하지 말고, 모집·이송·문서 위조·노동착취를 가능케 하는 중개 네트워크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전쟁경제의 취약한 고리는 전선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계약서와 이동 경로에 있을 수 있다.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가'가 아니라 '누가 전쟁의 비용을 떠안도록 설계되는가'다. 아프리카 인력의 유입은 러시아의 병력난을 보여주는 징후인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취약성이 전쟁경제에 흡수되는 방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거울 속 장면은 더 잔혹하고 더 일상적인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마주하게 될 것은 '전장'이 아니라, 전장을 가능하게 만든 수많은 이동 경로와 디지털 접촉면, 그리고 그 끝에서 조용히 사라진 개인들의 이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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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영 박사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국제개발협력학회 아프리카위원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경제학 박사. 주에티오피아 대사관 전문직 행정원 역임, '아프리카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 진출 전략', '동아프리카 스타트업 시장분석' 등 아프리카 경제 및 디지털 전환에 관한 다수 논문과 보고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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