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 폐지했는데도 신규 수탁…출연연 인건비 불안 여전
과기부, 신규 수탁 전수점검…"필요성 입증해야"
제도 전환 과도기 혼선…현장 "인건비 보장부터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정부가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폐지하며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인건비 때문에 신규 수탁과제를 따지 않아도 되는 연구환경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인건비 재원에 대한 불안감에 여전히 신규 수탁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뒤늦게 신규 수탁 현황을 전수 점검하며 수탁 필요성을 다시 따져 묻는 등 PBS 폐지 과도기 속 정책과 현장 엇박자가 드러나고 있다.
◇ PBS 폐지에도 현장은 신규 수탁…"인건비 보장 불안 여전"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등에 따르면 NST는 최근 각 출연연에 올해 신규수탁사업 현황과 함께 사업이 꼭 필요한지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청했다.
PBS는 연구자가 정부가 발주하는 수탁과제 등 외부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로, 연구자가 인건비 확보에 치중하면서 연구가 단기·소규모 과제로 파편화하는 등 부작용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PBS 폐지를 선언하고 5년에 걸쳐 PBS 기반 수탁과제를 출연금으로 단계적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당장 올해부터 인건비 확보만을 위한 신규 수탁은 불필요하다고 출연연에 제시했다.
하지만 인건비 보전에 대한 세부 제도 설계가 현장에 전달되지 않으면서 현장의 불안감은 오히려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당장 내년 인건비가 안정적으로 보장될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연구자뿐 아니라 기관도 모두 연초부터 신규 수탁과제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4월 이런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전 출연연의 수탁과제 수주 현황을 취합했다.
이후 수행 필요성이 인정되는 과제 외에는 추가 소명을 요구하는 등 수탁 필요성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NST 관계자는 "기관이 제출한 신규 수탁사업 자료를 검토한 결과 PBS 폐지 정책 추진과 출연금 확대 기조를 고려할 때 해당 사업을 반드시 수탁사업 형태로 수행해야 하는 객관적 근거를 보완해 제출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자료를 내년 츨연연 출연금 배정에도 일부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기관에서는 신규 수탁이 출연금에 영향을 줄 수 있단 걸 확인하면서 수탁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현장의 우려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PBS 폐지 과도기적 조치로 수탁과제가 모두 전환될 때까지 전략연구사업에도 인건비를 포함하기로 하면서 5년간은 인건비를 담보할 수 없단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방승찬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4월 공공·유관기관 업무보고에서 PBS에 대해 "5년 후에 혹시 (인건비 재정 충당) 가능성은 있다"며 "5년 후에라도 인건비 재정을 충당토록 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 26일 PBS 후속 조치 중 하나로 전략연구사업 내 인건비도 내년부터 바로 출연금으로 전환하는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또 내년에는 신규 정부수탁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기로 하면서 관련 지침을 올해 하반기 마련하기로 했다.
현장에서는 PBS 폐지의 방향성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제도 설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탁 축소 신호만 낸 것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PBS 폐지를 모두 만족하는 건 아니고 원래 수탁을 많이 하던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기관에 맡겨야 할 연구가 있는데 출연연보다 역량이 낮은 기관으로 과제가 넘어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기관 특성에 따라 일정 부분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부처 예산·연구역량도 변수…"예외 수탁 기준 정교화 과제"
또 PBS 기반 수탁과제가 전략연구사업으로 전환되면 기존 수탁예산을 집행하던 부처들의 예산 구조에도 변화가 생기는 만큼 부처 간 협의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4월 보고서에서 "관계부처 관점에서 PBS 폐지는 일부 수탁 과제의 기획·관리 권한을 출연연의 전략연구사업으로 이관하는 조치로, 결과적으로 소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일부를 다른 부처에 넘겨야 함을 의미한다"며 "부처 간 경쟁 관계라는 시각으로 보면 PBS에 해당하는 예산을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셈이라 조직의 이해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수탁과제에는 인건비를 편성하지 않기로 하면서 오히려 다른 부처가 출연연에 수탁과제를 맡길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처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 없이 연구비만으로 과제를 편성할 수 있어 기존보다 출연연에 수탁과제를 발주하기가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수탁과 그렇지 않은 수탁을 분류해야 추후 인건비 편성에 활용할 수 있어 분류한 것"이라며 "이미 수주한 과제를 취소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에는 전략연구사업이 급하게 마련됐지만 올해는 오랜 기간 검토를 거치고 부처 협의를 거쳤다"며 "내년부터는 더 일찍 준비해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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