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美-이란 종전의 시금석, 레바논

입력 2026-06-23 06:30
수정 2026-06-23 07:19
[인&아웃] 美-이란 종전의 시금석, 레바논

내전·외세 개입 속 표류…국가통합 과제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지중해 동부 연안의 레바논은 국토 면적이 경기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레바논은 고대 페니키아 문명의 중심지이자,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요충지였다. 수도 베이루트는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리기도 했다. 금융과 관광, 언론, 교육이 발달한 중동 최고의 개방 국가 중 하나였다. 냉전 시기엔 각국 정보기관과 외교관, 언론인들이 모여드는 '정보의 십자로'였다. 오늘날 레바논은 경제 파탄과 정치 마비, 종파 갈등, 무장세력 난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레바논 비극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마론파 기독교도와 수니파·시아파·드루즈파 등 이슬람계 공동체를 하나의 국가로 묶었다. 이때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도,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식으로 권력분점 체제가 형성됐다. 공존을 위한 절충안이었지만, 종파를 정치의 기본 단위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은 스스로를 레바논인이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종파의 구성원으로 인식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과 인구구조 변화, 경제적 불균형이 겹치며 종파 갈등은 점차 폭발력을 키워갔다.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15년간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기독교 민병대와 이슬람 세력,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충돌했고 시리아와 이스라엘 등 외세까지 개입했다. 1982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해 베이루트까지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시아파 공동체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강해졌다. 헤즈볼라는 이러한 환경 속에 탄생했고, 이란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헤즈볼라는 내전과 종파 정치, 외세 개입이 낳은 산물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에도 헤즈볼라는 남부 레바논의 군사세력으로 남았고, 이스라엘과의 충돌은 반복됐다.

미국-이란 간 종전 협상 과정에서 레바논 사태가 최대 난제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해야 하고, 이란은 헤즈볼라를 전략적 자산으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휴전 연장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은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미국과 이란은 스위스 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통항 문제와 함께 레바논 사태를 집중 논의했다. 양측은 레바논 내 군사행동을 관리하는 '갈등 완화 기구' 설치에 합의했다. 이란은 이를 두고 "첫 번째 실전 테스트는 레바논"이라고 평가했다. 레바논은 미국-이란 간 종전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레바논의 현 상황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최종 합의하더라도 레바논 스스로 분열의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안정과 충돌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레바논의 비극은 종교가 많아서가 아니라, 각 종파가 국가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구조에서 비롯됐다. 미국-이란 간 합의가 평화를 가져올 수는 있다. 그러나 레바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 협상이 아니라 국민 통합을 향한 노력이다. 이것이 레바논이 넘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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