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⒁:

입력 2026-06-23 07:00
[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⒁:

편견과 장벽을 허무는 우간다의 장애인 직업훈련학교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정중앙, 적도가 지나가는 우간다는 흔히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린다. 별명에 걸맞게 우간다는 일 년 내내 한국의 봄가을과 비슷한 선선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적도 지대임에도 해발고도가 평균 1천m를 넘는 고원 지대인 덕분이다. 우간다에서는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맥의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에서 한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사회보장 제도가 미비한 이 나라에서 장애는 곧 빈곤을 의미한다. 우간다 정부의 장애인 교육 정책은 초등 교육에 치우쳐 있다. 장애 아동과 청소년이 진정한 자립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기술직업교육훈련(TVET)이나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과 고용에서 밀려난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가정 안에서도 버림받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필자가 방문한 우간다 서부 지역에는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세워진 장애인 직업훈련학교들이 있다. 미용·재봉·목공·전기·건축 등 실무 중심의 기술을 가르치며 장애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곳들이다. 교실 한쪽에서는 미용을 배우는 학생이 마네킹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목공을 배우는 학생이 의자 다리를 사포로 다듬고 있었다.

직업훈련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부분의 장애 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사회적 낙인을 안고 살았다. 비장애인인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와 기술을 익히면서 그들 스스로에게서 변화가 시작됐다.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경제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좌절감은 줄어들고 자존감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직업훈련학교가 장애 학생들만 따로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서 함께 배우고 부딪히는 통합 교육의 현장이었다. 같은 교실에서 기술을 익히고 함께 작업하다 보면, 비장애 학생들은 장애가 곧 무능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매일 부딪히는 일상이 오랜 편견을 조금씩 허물어 가는 것이다. 장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장애 학생이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또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간다의 장애인 직업훈련학교는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일방적인 시혜를 베푸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힘과 공존의 통로를 마련해 주며,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우간다 현지 연구를 진행하며 가졌던 인터뷰 가운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인터뷰할 때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소통의 한계 때문에 답변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필자가 가진 편견과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수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수어로 질문을 건네자 아이들은 손짓과 표정을 총동원해 자신의 꿈과 학교생활을 얘기했다. 그들의 표정은 따로 통역을 듣지 않아도 이해가 될 만큼 많은 것을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비장애 학생들은 낯선 외국인 교수 앞이라 부끄러워하며 오히려 말수가 적었지만, 이들은 그동안 묻어둔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놓는 듯 자유롭게 얘기했다.



또 다른 인터뷰는 왜소증을 가진 지역 지도자와 자리였다. 어린 시절 그는 남들과 다른 신체적 조건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편견과 조롱 앞에서 늘 숨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직업훈련이었다.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사회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장애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는 믿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지역에서 제법 규모를 갖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 중에는 그와 같은 장애인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기회를 다음 세대에 되돌려주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는 교육과 기회가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물론 현장의 성취 뒤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도 많았다. 장애인 교육은 외부 후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장애 학생이 기술을 배워 창업하거나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그다음 단계의 지원도 필요했다.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소액금융을 연계해 주거나, 지역 기업과 연결해 일자리로 이어 주는 후속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었다. 비장애 학생들조차 취업이 어려운 곳에서 장애 학생이 취업하고 창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간다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현지 공무원들의 낮은 정책 이해도나 예산 부족 같은 구조적 한계와 부딪히기도 했지만, 학교 안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스토리는 미래와 희망을 생각하게 하였다. 데이터와 논문 속에 갇혀 있을 때보다 개발협력사업 현장에 나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때 필자는 연구자로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 자신의 미래를 열심히 설명하던 청각장애 학생들과 자신의 성공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성공한 기업가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직업훈련을 통해 얻은 자신감의 씨앗이 우간다 서부의 척박한 토양 위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렸기를 바란다. 적도의 햇살 아래에서 꿈을 키우던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의 일터에서 어엿한 일꾼으로 자리 잡고, 차별과 배제가 아닌 공존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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