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보건의료 점검] ① USAID 해체 1년…에볼라 확산 키워
"미국 WHO 탈퇴까지 겹쳐 세계 보건 체제에 원투쓰리 펀치"
美 보건 지원 재개도 '거래' 방식…아프리카, 탈원조 주체적 대응 모색
[※ 편집자 주 = 오는 7월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 국제개발처(USAID)를 해체한 지 1년이 됩니다. 미국 등 해외 원조에 크게 의존하던 아프리카의 취약한 보건의료 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최근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등지에서 백신조차 없는 신종 에볼라가 창궐, 감염자가 1천명에 육박하면서 국제 보건 체계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위기에 직면한 현장을 진단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아프리카 보건의료 점검' 기획기사 5건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세계 최대 공적개발원조(ODA) 기관인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한 지 다음 달로 1년을 맞는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문제 삼아 세계보건기구(WHO)도 공식 탈퇴한 바 있다.
미국의 USAID 해체와 WHO 탈퇴는 이들 기구 원조에 가장 많이 의존했던 아프리카의 보건 의료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지원 중단이 최근 아프리카의 에볼라 감염 사태 확산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러나 서방 지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원조 의존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대응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 "美 원조 감소에 지난해 50만∼100만명 추가 사망"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재집권에 성공하고서 대외 원조 지출을 대폭 삭감한 데 이어 반년 뒤인 7월 미국의 대외 원조 업무를 담당하는 USAID를 사실상 해체했다.
USAID가 국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외국 지원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이유에서였다.
USAID는 기존에 440억달러(약 66조8천억원)가 넘는 예산을 책정해 전 세계 인도주의 지원 자금의 40% 이상을 제공했던 세계 최대 ODA 기관이었다.
미 하원에 따르면 미 국무부와 USAID는 매년 80억달러(약 12조2천억원)가량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투입해 보건·위생, 교육 등 인도적 지원을 했다.
USAID 해체와 미국의 원조 중단은 아프리카 저개발국에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아프리카의 보건 의료 분야가 타격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해외 원조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대통령의 긴급계획'(PEPFAR)이다.
미국의 지원 중단 직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HIV·AIDS 프로그램 의료 종사자 8천명이 실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 공식적인 개발 원조로 630억 달러를 지원했으나 지난해는 절반 미만인 290억 달러로 급감했다.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는 USAID 폐쇄와 미국의 원조 삭감에 따른 보건 의료 상황 악화로 이전과 비교해 지난 한 해에만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50만∼100만명이 추가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5년 정부 기부액이 38억500만달러로 전년(23억5천100만달러)보다 38%(14억5천400만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UNHCR은 최대 기부국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일본 정부가 기부를 줄인 것이 정부 기부액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UNHCR은 "생명을 구하는 활동을 최우선으로 하고 피란민 커뮤니티를 포함해 수백 개의 파트너 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했지만, 이런(예산) 제약으로 인해 인도적 수요가 급증했던 시기에 개입의 규모가 크게 제한됐다"고 언급했다.
◇ "美·유럽 등 국제사회 지원 감소 에볼라 확산에 일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의 ODA가 줄어든 가운데 지난달부터 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 분디부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주콩고 보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자국 내 에볼라 누적 확진자가 933명으로, 이 가운데 24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치명률은 26%다.
이웃한 우간다에서는 지금까지 19명이 확진됐으며 이 가운데 2명이 숨졌다.
WHO는 지난달 17일 민주콩고와 우간다에서 발생한 에볼라 발병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지난달 15일 민주콩고 동부 이투리주에서 에볼라 발병이 선언된 이후 민주콩고와 우간다에서 확진자가 계속 증가한 것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 보건 지원 축소가 사태를 키웠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미국은 WHO의 최대 공여국으로 2022∼2023년에 거의 13억달러를 제공했는데, 미국의 기구 탈퇴로 질병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에볼라의 빠른 확산 원인으로 초기 감염을 신속히 파악하고 확산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감시 시스템, 비상 물자 부족을 꼽았다.
톰 프리든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감염병 대응 지연과 곧바로 연결 짓는 것은 단순한 시각이라면서도 "WHO 탈퇴, CDC 와 USAID 인력 감축은 세계 보건 체제에 원투쓰리 펀치를 날렸다"고 지적했다.
◇ 美, 보건원조 재개 대가로 데이터·광물 요구…가나 대통령 "보건 우리 스스로"
국무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미국 우선주의 글로벌 보건 전략'(America First Global Health Strategy)은 보건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 등에 따르면 이 전략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에이즈와 결핵 등 감염병 퇴치를 위한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새로운 양자 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협정에는 미국 기업에 대한 광물 자원 접근권 보장과 의료 데이터 제공, 자국 예산 투입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볼라가 확산 중인 민주콩고는 미국과 광물 협정을 체결한 뒤 9억달러 규모의 보건 원조 협정을 맺었다.
지난달 말 현재 미국과 이런 거래적 협정을 체결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는 24개국에 달한다.
하지만 짐바브웨와 가나, 잠비아는 자국민의 건강 정보 제공과 광물 자원 접근권 등에 대한 이견으로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아프리카) 정부들은 인권을 위협하는 조건부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에 제공된 아프리카인의 의료 데이터가 미국 제약사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디지털·게놈 식민주의'의 한 형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5일 보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아프리카 의료 지원 확대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민주콩고와 역내기구 아프리카연합(AU)에 긴급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했으며 민주콩고에는 의료전문가팀도 파견했다고 류궈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 16일 밝혔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근무 중인 중국 측 의료 인력 약 1천명이 현지 주민들과 함께 에볼라에 맞서고 있다.
아프리카 내에서는 차제에 서방의 원조 대신 자체적으로 보건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은 지난 3월 방한 때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보건 체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원을 우리 스스로 조달하고 금융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콩고와 우간다, 남수단 3개국은 최근 3억1천900만달러 규모의 에볼라 대응 계획을 함께 마련했다. 민주콩고와 우간다 정부는 에볼라 대응을 강화하고 의심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민주콩고 측 국경 지대에 공동 의료 캠프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남아공도 역내 에볼라 대응을 위한 지원 규모를 1천350만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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