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유물 탐낸 이스라엘…'영토 병합' 비판에 입법 중단

입력 2026-06-03 04:46
팔레스타인 유물 탐낸 이스라엘…'영토 병합' 비판에 입법 중단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스라엘 우파 정권이 팔레스타인 점령지 내 고고학 유물에 대한 통제권을 민간 정부로 이관하기 위해 추진한 '점령지 유산청'(Judea, Samaria and Gaza Heritage Authority) 설립 입법이 안팎의 반발 속에 멈춰 섰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2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내 고고학 유물에 대한 이스라엘 당국의 직접적인 민간 통제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유산청 설립 입법 절차를 정차를 중단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점령지 유산청 설립 법안은 크네세트(의회) 본회의 최종 표결을 앞두고 전격 보류됐다.

명목상으로는 '문화유산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 법안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비판 속에 국제사회의 논란을 자초했다.

법안의 뿌리는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권 여당인 리쿠드당의 아미트 할레비 의원이 처음 발의한 이후, 극우 성향의 정착민 활동가 출신인 츠비 수코트 의원 등이 합세하면서 입법 드라이브가 걸렸다.

지난 2월 크네세트 교육·문화·체육위원회에서 세부 조항이 다듬어졌고, 지난달 11일 크네세트 본회의에서 찬성 23표, 반대 14표로 1차 독회(심의)를 통과했다.

현재 서안의 고고학 유물 관리는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민간행정처의 군사 고고학 장교가 전담하고 있다. 점령지에 대한 통제권이 국제법상 이스라엘 정부가 아닌 '점령군(군대)'에 있음을 보여주는 법적 안전장치다.

그러나 이번에 추진된 법안은 이 통제권을 군이 아닌 이스라엘 유물부 산하의 민간 법정 기관으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스라엘의 민법과 행정력을 팔레스타인 영토에 직접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국제법상 점령지에 자국의 민간 법률을 적용할 수 없도록 한 제4차 제네바 협정에 반하는 행위다.

특히 이 법안은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관할 구역(A, B 구역)은 물론, 현재 군사 작전이 진행 중인 가자 지구까지 관할권을 넓히도록 설계됐다.

법안에 명시된 신설 유산청의 권한은 초법적인 수준이다. 유물 보호를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하거나 매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됐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에메크 샤베는 이를 두고 "고고학을 무기화해 팔레스타인인의 토지 권리를 강탈하고 분리 장벽을 공고히 하려는 조치"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입법 찬성론자들은 서안이 유대 민족의 요람이며, 그곳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아무런 역사적 연관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측의 유물 관리 부실과 도굴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강변했지만, 학계와 군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이스라엘 고고학계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제 학계로부터 이스라엘 고고학 전체가 보이콧을 당하게 될 것이라며 '학문적 자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군 당국과 의회 법률 자문단은 이 법안이 국제사회에서 '불법 영토 합병'의 결정적 증거로 채택돼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사법 리스크와 국제 형사재판소(ICC)의 압박, 그리고 가자 전쟁 이후 극도로 악화한 대외 여건 속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더 이상의 무리한 입법이 정권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네타냐후 정부가 우파 연정의 붕괴를 막기 위해 언제든 이 법안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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