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이단아 돌풍…'콜롬비아트럼프' 에스프리에야 정권교체할까
5년 전만 해도 정치 혐오한다던 콜롬비아 '스타 변호사' 출신
트럼프식 화려한 무대, 증오 부추기는 언사로 우파 결집
대척점에 있는 세페다와 한판 대결…중남미 '블루 타이드'는 계속될까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콜롬비아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후보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48) '조국의 수호자들' 후보가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하면서 콜롬비아에도 우파 물결이 일지 관심을 끈다.
에스프리에야는 지난 31일(현지시간) 열린 대선 1차 투표에서 1천36만1천499표(43.7%)를 얻어 968만8천361표(40.9%)를 얻은 집권 여당 후보 이반 세페다를 제치고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에스프리에야가 1위를 차지한 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대선 레이스 상당 기간 세페다가 4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반면, 에스프리에야는 3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판으로 갈수록 보수표가 에스프리에야 쪽으로 결집하면서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했다.
정통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팔로마 발렌시아 '민주중심당' 후보는 선거 초반 20% 가까운 지지율로 에스프리에야와 호각세를 이뤘지만, 유세가 진행될수록 같은 우파 진영에 속한 에스프리에야에게 표를 빼앗기며 본선에서 163만9천685표(6.9%)를 얻는 데 그쳤다.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 정통 후보로 나선 것인데,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발렌시아는 전직 대통령을 지낸 기예르모 레온 발렌시아의 손녀로, 콜롬비아 주류사회를 대표하는 우파 명문가 출신이다.
갑작스럽게 콜롬비아 정치계의 '핵폭풍'으로 등장한 에스프리에야는 도널드 트럼프가 그랬듯, 정치계의 이단아에 가깝다. 그는 그간 콜롬비아에서 그 어떤 공직 경험도 없다. 장·차관을 역임한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을 지내지도 않았다.
50대에 가까운 나이 동안 오로지 돈을 버는 데에만 열중했다. 그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변호했다. 콜롬비아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 기업의 수장 다비드 무르시아 구스만을 변호했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자금 세탁책으로 지목된 알렉스 사브를 도왔으며, 우익 무장단체 조직지도자들의 감형도 이끌었다. 결국 가장 수임료를 많이 받는 변호사가 되면서 커다란 로펌도 세웠다.
큰 부를 쌓자, 이번에는 정치에 도전했다. 비싸고 화려한 의상을 입으며 부를 과시하던 그는 '조국을 굳건히'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대선에 도전했고, 곧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승률 높은 스타 변호사답게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데 밝았다. 여기에 방청객과 판사의 마음을 돌리곤 했던 능숙한 언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에스프리에야는 우선 테러가 빈번하고 세계적 마약상들이 판을 치는 등 현 정권 들어 극도로 불안해진 치안 문제를 공략했다.
그는 '엘살바도르식'의 강력한 치안 대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마존 밀림에 엘살바도르 감옥 '세코트'(CECOT) 같은 거대 교도소를 10개가량 짓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대통령과 군대에 광범위한 권한을 임시 부여하는 헌법적 조치인 비상사태 활용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부켈레처럼 '계엄령'을 주장하고 나섰다.
기업 세금 감면 및 공공지출의 과감한 축소, 이미 법적으로 허가된 낙태와 동성 커플의 아동 입양도 반대했다. 예전에는 동성 커플의 아동 입양을 찬성했으나 네 자녀를 키우다 보니 부모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또한 무교였으나 이제는 복음서를 매일 읽는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이 강한 콜롬비아 정통 보수 지지자들의 지지를 노린 행보로 읽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무대 장치, 음향, 조명, 텔레비전 쇼 같은 연출을 동원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방식의 무대 연출과 좌파를 원초적으로 비난하는 극단적인 언사까지 사용하면서 지지자들의 마음을 들쑤셨다. 이 같은 무대 연출 방식과 언사는 나치 시절부터 트럼프까지 이어지는 극우적 스타일의 전형적인 선거운동 방법이다.
그러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은 상당하다. 에스프리에야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인 '엘살바도르식 범죄와의 전쟁'이 특히 그렇다. 아마존 밀림을 끼고 있는 콜롬비아는 높은 산과 밀림이 없는 소국(小國) 엘살바도르와는 다르다. 엘살바도르보다 54배나 큰 이 너른 땅에서 카르텔 조직이 마음만 먹고 숨으려고 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좌파 게릴라와의 싸움으로 사회가 극단적인 혼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겠지만 에스프리에야는 스스로를 '엘 티그레'(호랑이)라 지칭하며 강성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현실적인 한계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그가 내뱉는 강성 언사와 선명한 정책은 기존 좌파 정부의 실정에 지친 보수층과 중도층의 마음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더욱이 콜롬비아는 현대사에서 60년 가까이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했던 뿌리 깊은 우파 지형의 국가다. 지난 대선에서 사상 첫 좌파 정권이 들어섰지만, 치안과 체감경기 악화로 우향우 서사를 갈망하는 대중적 정서가 이번 대선에서 에스프리에야라는 '이단아'를 키워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5년 전만 해도 정치를 혐오한다고 했던 이 '아웃사이더'는 이제 자신을 '소외된 이들'(los nunca)의 대표라고 명명한다. 또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이처럼 정치 이단아로서 콜롬비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콜롬비아의 '호랑이' 에스프리에야가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극좌 후보 이반 세페다를 누르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
오는 21일 진행되는 이번 결선은 콜롬비아의 정권교체 여부뿐 아니라, 최근 중남미를 휩쓸던 좌파 물결(핑크 타이드)의 퇴조와 우파 회귀(블루 타이드)의 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목이 쏠린다. 최근 수년간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라과이 등에서 우파 정권이 잇따라 들어선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칠레에서도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정권이 출범하는 등 대륙 전역의 '우향우' 흐름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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