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중 AI 격전지로…중국 AI 공세 거세진다
미국 AI 대비 최대 20배 싼 가격 경쟁력 무기
딥시크 이어 미니맥스·지푸AI까지 국내 공략
(서울=연합뉴스) 오지은 기자 =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한국 시장을 새로운 격전지로 삼아 본격화하고 있다.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등 미국 빅테크가 선점한 국내 생성형 AI 시장에 미니맥스, 지푸AI 등 중국 AI 기업들이 초저가 전략과 콘텐츠 특화 기술을 앞세워 잇따라 진출하면서 국내 AI 생태계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들은 데이터 안보와 AI 공급망 종속 우려 사이에서 비용 절감과 보안 리스크를 동시에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 미중 AI 기업들 한국 총집결…K-콘텐츠 시장이 전략 거점
1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AI 기업들이 최근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K-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웹툰을 비롯해 게임, 영상,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해 생성형 AI를 실제 서비스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으로 평가된다. 신기술 수용 속도가 빠르고 모바일, 반도체, 인프라까지 잘 갖춰져 있어 글로벌 AI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검증과 사업 확장을 동시에 시도할 수 있는 전략 거점으로 꼽힌다.
이미 한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들은 기업용 AI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오픈AI는 최근 서울에서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첫 엔터프라이즈 AI 행사를 열고 기업용 AI 확산 전략을 공개했으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앤트로픽 등도 국내 클라우드·통신·플랫폼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중국 AI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과 콘텐츠 특화 기능을 앞세워 웹툰·게임·숏폼·웹드라마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이 단순한 서비스 경쟁을 넘어 장기적인 생태계 주도권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AI 기업들은 초거대 AI 모델 성능과 글로벌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용 AI 시장 장악력을 앞세워 우위를 유지하려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저렴한 비용과 콘텐츠 특화 기술을 무기로 시장 침투를 확대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과 이용자들도 가격 경쟁력과 보안·데이터 주권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가 검색과 콘텐츠 제작을 넘어 업무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까지 연결되면서 특정 국가의 AI 생태계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장기적으로 기술 종속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한국 시장이 미국 AI의 기술 표준 경쟁력과 중국 AI의 가격 경쟁력 그리고 국내 기업들의 소버린 AI 전략이 충돌하는 시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IT 업계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LG CNS, SK텔레콤 등은 소버린 AI와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구축에 속도를 내며 글로벌 AI 기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선 상태다.
◇ 오픈AI·구글 아성에 도전…중국 AI, 한국 시장 정조준
최근 중국 AI 기업의 대표적인 한국 진출 사례는 바로 미니맥스다.
중국의 오픈AI로 불리는 AI 스타트업 미니맥스는 국내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들은 국내 웹툰, 숏폼 콘텐츠, 웹드라마 제작사 등을 대상으로 AI 기술을 선보이는 등 물밑 작업을 전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니맥스는 가상 캐릭터 대화 플랫폼 토키를 선보이며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은 중국의 AI 기업이다.
또 다른 중국의 AI 기업인 지푸AI의 경우 국내 벤처캐피털(VC)인 더벤처스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국내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지푸AI 대형언어모델(LLM)인 GLM 시리즈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제공하려고 추진 중이다.
구글 차이나 사장 출신 리카이푸 박사가 설립한 0.1AI도 오픈소스 모델 Yi 시리즈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으며 국내 AI 스타트업도 해당 오픈소스 모델을 미세조정(파인튜닝·Fine-tuning)한 AI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중국 AI 기업들은 한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 단순 모델 판매를 넘어 콘텐츠 제작 생태계와의 협업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웹툰 원작 기반 영상 제작, 게임 캐릭터 음성 생성, 숏폼 자동 편집 등 K-콘텐츠 산업에 특화된 생성형 AI 기능을 앞세워 국내 제작사와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축적한 영상·캐릭터 생성 기술을 국내 콘텐츠 산업에 접목해 빠르게 시장 영향력을 키우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중국 AI 기업들이 한국을 단순한 수출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진 만큼 한국의 주요 콘텐츠 기업과 협업 사례를 확보하면 동남아와 일본, 북미 시장 진출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중국 AI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콘텐츠 시장이 기술 검증과 글로벌 홍보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시험무대 성격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중국 AI 기업이 내세우는 강점은 미국 AI 기업 대비 20분의 1수준에 불과한 토큰 비용이다.
AI 모델 분석 플랫폼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100만 토큰 출력 비용을 기준으로 할 때 앤트로픽의 클로드 4.5가 25달러, 오픈AI의 GPT-5.1이 10달러인 반면 미니맥스의 플래그십 모델 M2.7은 1.15달러에 불과하다.
AI 인프라 비용으로 고심하던 국내 중소 스타트업과 콘텐츠 제작사 사이에서 중국 AI 모델 도입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배경이다.
◇ 딥시크 후폭풍 여전…데이터 안보·공급망 우려 확산
하지만 이러한 중국 AI의 적극적인 진출에도 중국 AI 기술을 둘러싼 보안 리스크에 대한 경계감이 강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중국 AI 기술이 백엔드 인프라로 침투할 경우 국내 사용자의 민감한 데이터와 기업 기밀이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서버로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초 중국의 AI 기업 딥시크가 국내 사용자 정보를 동의 없이 국외로 이전하고 프롬프트 입력 내용을 수집한 데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시정 권고를 내리면서 국내 기업에는 중국 AI 모델에 대한 경계가 큰 상황이다.
당시 정부 부처와 금융권, 방산업체 등은 사내 딥시크 접속을 차단하는 등 경계 태세를 보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생성형 AI가 단순 서비스 단계를 넘어 기업 내부의 업무 시스템과 개발 환경 전반에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플랫폼보다 데이터 안보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특히 기업 내부 문서와 고객 데이터 등이 AI 모델 학습이나 추론 과정에 활용될 경우 정보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 상당수는 외부 생성형 AI 사용 시 입력 정보 제한이나 자체 AI 사용 원칙 등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AI 공급망 차원의 리스크 관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 AI 모델이 국내 스타트업과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솔루션 등에 광범위하게 탑재될 경우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중국산 AI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AI 역시 국가 핵심 인프라 성격이 강해지는 만큼 가격 경쟁력만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과 기술 종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보안 전문가는 "중국 국가정보법상 기업이 수집한 데이터를 정부가 요구하면 거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라며 "오픈소스 모델의 경우 악성코드 삽입 등 보안 취약점 노출 우려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중국 AI 모델의 가격 매력도로 인해 중국 AI 기업은 국내에서 보안 규제가 엄격한 금융이나 공공 분야를 피해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콘텐츠 사업으로 진출하는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중국 AI 기업의 공세가 이어질 경우 소버린 AI 구축을 추진 중인 국내 IT 기업의 설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서비스 규제에 그칠 게 아니라 중국 AI 기업의 기업간거래(B2B) 공급망 데이터 흐름에 대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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