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쿠바혁명 주역 라울 카스트로 기소…미·쿠바 긴장 고조
쿠바 움직이는 막후 실력자 기소에 양국 정세 '격랑'
국방장관 시절 항공기 격추사건 관련해 기소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미국 정부가 쿠바 혁명 주역이자 막후 실력자인 라울 카스트로(95)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로이터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실상 쿠바를 지배하는 실질적 수장을 미국 사법당국이 직접 겨냥하면서, 올해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태로 얼어붙은 중남미 정세가 다시 한번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번 기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바의 정권 교체를 강력히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쿠바가 다음 차례"라며 군사적 조치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가 외국의 정상급 지도자를 기소한 사례는 드물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은 쿠바에 연료를 공급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고강도 제재를 가해 사실상 쿠바를 전면 봉쇄 중이다. 이에 따라 쿠바 전역에서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기소는 1996년 미국 마이애미 기반 쿠바 망명 단체인 '구출의 형제들'이 운용하던 항공기 2대가 쿠바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4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라울 카스트로는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었다.
미국의 기소로 고령의 카스트로가 감옥에 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가 칼을 빼 든 이유는 명백한 '전술적 압박 카드'라는 분석이다. 라울 카스트로가 쿠바 정권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막후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 피델 카스트로, 친구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부터 약 반세기 동안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피델이 건강 악화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는 10년간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권력의 장막 뒤에서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표면적 국가수반이라면, 쿠바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은 라울이 이끄는 카스트로 가문에서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쿠바 정부는 라울 카스트로의 기소와 관련해 현재까지 논평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인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국(미국) 스스로가 공헌한 덕분에 우리 반제국주의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여기서 "제국의 공헌"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와 이번 기소 같은 압박이 오히려 쿠바 내부의 반미 결속력을 키워줬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쿠바는 지난 1902년 5월 20일 스페인으로부터 공식 독립했으나, 이후 1959년 쿠바 혁명 전까지 오랜 기간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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