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 카스피해…호르무즈 막힌 이란-러시아 '조용한 뒷거래'
러, 호르무즈 해협 미군에 막히자 카스피해로 이란에 물자 공급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미국에 맞선 전쟁으로 페르시아만을 통한 무역로가 막히면서 카스피해가 이란의 새로운 물자수송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스피해는 이란 북쪽에 있는 내륙해다.
이란과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에 둘러싸여 있다.
NYT는 이 바닷길이 서방의 제재에 전쟁이 겹친 이란과 러시아의 무역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가 그간 이란에 물자를 공급해오던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미군의 봉쇄로 막히자 대체 항로로 카스피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선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에 드론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 달 넘게 이어진 미국과의 전투에도 이란이 무기고를 재건하고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3월 카스피해 일대의 이란 해군을 상대로 공습을 단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란은 카스피해 연안의 4개 항구를 24시간 가동해 밀과 옥수수, 사료, 해바라기유 등 필수 식료품도 들여오고 있다.
러시아 해운산업을 추적하는 포트뉴스 미디어그룹의 분석책임자 비탈리 체르노프는 흑해를 통해 매년 이란으로 운송되던 러시아산 밀 200만톤이 이제는 카스피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오랜 기간 카스피해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주목해왔다.
때문에 카스피해를 포함해 서방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무역 회랑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란이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에 탄약을 보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스피해를 통한 무역 규모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이 대부분 위성 추적 장치를 끈 채 움직이는 데다 페르시아만과 달리 인접한 5개국만이 접근할 수 있는 내륙해의 특성상 미군이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기 때문이다.
파리정치대학의 이란·러시아 전문가 니콜 그라예브스키 교수는 "제재를 피해 군사물자를 이동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가 바로 카스피해"라고 말했다.
이 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미국의 손길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허드슨연구소의 루크 코피 선임연구원은 카스피해 연안의 국가들을 담당하는 미군 사령부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럽사령부는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를, 중부사령부는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을 관할하며 국무부 내에서는 세 개의 다른 부서가 이들 5개국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피 연구원은 이런 점 때문에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카스피해가 지정학적 블랙홀과 같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연구소의 러시아 중동 정책 전문가 애나 보르셰프스카야는 "러시아와 이란은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아냈다"며 "이스라엘도 이 작은 무역로가 러시아가 이란에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통로임을 파악했기 때문에 이곳을 폭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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