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美의회서 '나토 중요성' 역설…트럼프 우회 비판(종합)
모친 이어 35년만에 美의회 연설…"행정권은 견제와 균형의 대상"
"9·11 때 나토 집단방위 첫 발동…우크라 방어에도 굳은 결의 필요"
"'내향성 촉구' 외면하길" "자연시스템 붕괴 대응"…美외교·에너지 정책 지적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의 가치를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미심장한 '견제구'를 던졌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찰스 3세는 이날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은 어느 한 나라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며 "우리의 관계는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십"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지난 80년 동안 우리를 지탱해 온 모든 것을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그것을 기반으로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히면서 "(대서양의) 파트너십은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올해로 77년째를 맞은 나토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찰스 3세는 "올해는 9·11 테러 25주년이 되는 해"라며 "9·11 테러 직후 나토가 처음으로 나토 헌장 제5조(집단방위 조항)를 발동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테러에 맞서 단결했을 때 우리는 그 부름에 함께 응했다"고 상기했다.
그러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공동 안보를 규정해 온 순간들에서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며 "그와 같은 굳은 결의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그 용감한 국민들을 방어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미군과 그 동맹국의 헌신과 전문성은 나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로의 방위를 위해 서약하고, 우리의 시민과 이익을 보호하며, 북미와 유럽을 공통의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고 했다.
또 영국 국왕이 재위 기간 처음 미국을 방문했던 1939년에 "유럽에서는 파시즘 세력이 확산하고 있었고, 미국이 자유 수호를 위해 우리와 함께하기 이전 어느 시점에, 우리의 공동 가치가 승리를 거뒀다"며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서 있지만, 그 가치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찰스 3세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에 유럽 국가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서 나토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조약 탈퇴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대전 당시 독일, 냉전시기 소련에 맞섰던 '대서양 동맹' 정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발휘돼야 한다는 취지도 담겼다.
찰스 3세는 오랜 우방인 미·영 관계에 이란전을 계기로 냉기류가 형성된 점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영국 국빈 방문 중 말했듯, 미국과 영국 사이의 친족과 정체성의 유대는 값을 매길 수 없고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아무 신앙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소중히 여길 의무"가 "두 나라의 본질"이라고 하는 한편, "수백만 년 전 (영국의) 스코틀랜드 산맥과 (미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은 하나였다"고 종교적·지리적 유대감도 강조했다.
찰스 3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행사, '신고립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우선주의' 외교 정책 기조, 신재생 에너지를 배척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장려하는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뼈 있는' 말을 했다.
찰스 3세는 "우리의 동맹이 유럽과 영연방, 그리고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함께 우리의 공동 가치를 계속해서 수호하기를, 그리고 점점 더 내향적으로 되자는 촉구를 우리가 외면하기를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서양 동맹'을 강조하면서 "대서양의 깊은 곳에서 비극적으로 녹아내리는 북극의 빙하에 이르기까지"라고 표현하는 한편, 미국의 자연유산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 세대는 중대한 자연 시스템의 붕괴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미 연방대법원이 왕권 제한과 법치 등을 규정한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를 160차례 이상 판례에 인용했다면서 "무엇보다 행정권이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라는 원칙의 기초"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왕적 행정권 행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찰스 3세는 즉위 이후 이번에 처음 미국을 찾은 것으로, 영국 국왕의 미 의회 연설은 1991년 그의 모친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후 처음이다.
그는 30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연설 초반 "난 후방 교란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며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벌였던 독립전쟁에 빗댄 농담을 해 좌중이 폭소했다.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 각료 등은 연설 도중 여러차례 기립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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