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이란핵합의 걷어차더니…닮은꼴 딜레마 직면한 트럼프
호르무즈 쥐고 농축권 고수하는 이란…트럼프엔 '오바마보다 나은 합의' 절실
트럼프, 거듭 휴전 연장하며 오락가락 행보…'오바마 비판'이 부메랑 될 수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2016년 1월 현금을 가득 실은 항공기가 이란 테헤란으로 날아갔다.
유로와 스위스프랑 등으로 4억 달러어치의 현금이 미국에서 넘어간 것이다. 이란 매체를 통해 '현금다발'이 보도되자 미국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를 체결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현금다발이 건너간 즈음에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여러명이 석방되면서 핵합의 대가와 인질 몸값으로 현금을 지급했다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JCPOA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단골 비난'이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나쁜 핵합의를 체결해 놓고 현금뭉치까지 건넸다는 것이다.
4억 달러는 미국이 이란에 지급해야 할 무기 대금 17억 달러의 일부였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이란에 무기 인도를 거부했고 이란은 미리 낸 구매 대금을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구매 대금은 4억 달러였는데 수십년간 이자가 13억 달러나 붙어 17억 달러가 됐다. 국제 소송이 벌어지면 패소 가능성이 컸기에 오바마 행정부는 4억 달러를 보내기로 했다.
이란의 국제금융시스템 접근을 국제 제재로 막은 상태였고 이란과의 달러 거래도 불법이어서 스위스프랑 등의 외화가 동원됐다.
핵합의와는 무관한 사안이었으나 오바마 행정부 역시 17억 달러 지급이 핵합의 체결로 이란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툭하면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에 건넨 현금다발을 내세우며 JCPOA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맹폭해온 JCPOA과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지적했다.
JCPOA에 따라 이란은 핵물질 대부분을 포기하고 핵개발과 관련될 수 있는 활동을 대폭 제한하며 단계적 경제제재 완화를 받는 조건으로 국제 사회의 핵사찰을 수용키로 했다.
보유 우라늄의 98%를 국외 반출하고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원심분리기의 3분의 2를 해체했다. 또 2030년까지 우라늄 농축을 3.67% 이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권도 모두 내려놓기를 원하지만 이란으로서는 이를 '레드라인'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여러 핵심 조항이 15년 후인 2030년 만료되도록 한 JCPOA의 일몰 조항도 맹비난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JCPOA에서 탈퇴한 뒤 이란이 확보한 60% 고농축 우라늄 440㎏을 처리해야 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의 실질적 효력까지 확인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런 주요 쟁점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면 제재완화를 비롯한 대가를 건네야 한다.
이란이 비축한 고농축 우라늄 포기를 대가로 이란 자금 200억 달러의 동결을 해제하는 방안이 검토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현실화할 경우 200억 달러를 비롯해 이란이 합의로 얻게 되는 대가가 고스란히 핵개발에 동원될 것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에 가했던 비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했던 합의보다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JCPOA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오바마의 JCPOA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한 두가지 성과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JCPOA 타결에만 20개월이 걸렸다. 더구나 JCPOA는 타결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이란의 미사일 프로그램이나 역내 대리세력 지원 문제는 놔두고 핵문제에만 집중했다.
신속한 타결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 강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다 휴전을 연장하고 혼선을 빚는 발언을 거듭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계속 노출하면서 전략의 부재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수석대표로 이란과의 협상에 나섰던 웬디 셔먼은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행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고 있어서 이란의 요구는 2015년보다 커질 것"이라며 "트럼프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비축분인가? 농축인가? 미사일인가? 대리세력인가? 호르무즈 해협인가?"라고 지적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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