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살상무기 수출 빗장 풀었다…'전쟁 가능 국가'로 성큼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제한 조항 남겼지만 실효성 지적
자위대 헌법 명기·국가정보국 신설 등 다카이치 정권 우경화 속도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평화헌법 체제 아래서 그간 금지됐던 살상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일본 우파의 숙원 사업인 '전쟁 가능 국가'로 큰 발걸음을 옮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21일 각의(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방위 장비의 수출 규정을 정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 지침을 개정했다.
다카이치 정권 수립 반년을 맞은 시점에서 '강한 일본' 재건을 주창하며 추진해온 살상 무기 수출의 길을 확실하게 열어젖힌 것이다.
일본은 1967년 방위 장비 수출 3원칙을 표명하고 1976년 미키 타케오 내각이 '헌법과 외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의 정신에 따라 무기 수출을 삼간다', '무기 제조 관련 장비의 수출은 무기에 준하여 처리한다'는 등의 지침을 정하며 사실상 무기 수출을 전면 금지해왔다.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을 천명해 평화헌법으로도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 9조에 기반한 흐름이었는데,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2014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통해 무기 수출 금지의 족쇄를 풀겠다고 나서면서 깨지고 만다.
아베 전 총리는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해 조건부로 무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다만, 수출할 수 있는 방위 장비를 구난, 수송, 경계, 감시, 소해(掃海·바다의 기뢰 등 위험물을 없앰) 등 5개 유형으로 제한하고 살상 능력을 갖춘 완제품 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아베 내각을 계승한 다카이치 정권은 이 제한조차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우파 성향 일본유신회와 지난해 10월 연립 내각을 결성하면서 만든 합의 문서에 3원칙 운용 지침 개정을 명시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방위 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 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의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자 하는 숙원이 풀린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방위 장비 이전 3원칙 개정 뒤 자신의 X(엑스·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안보 환경이 엄중해짐에 따라 한 국가만으로는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방위 장비 이전은 파트너국의 방위력 향상과 일본 안전 보장 확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중국이 미사일, 항공모함을 증강하고 북조선도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미국, 호주 등 동맹국 군대와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동맹국과 무기 공유로 공동 훈련 및 유사시 대비에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3원칙 개정 뒤에도 무력 분쟁 당사자로서 전투 중인 국가에 무기 수출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안보 필요성을 고려해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4대신(총리·외무상·방위상·관방장관) 회의' 결정에 따라 수출할 수 있다며 여지를 열어 놨다.
이에 아사히신문은 "일본 안보'를 이유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에도 무기를 수출할 수 있게 여지를 남긴 것은 전후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억제해 온 무기 수출 정책이 크게 전환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거나 파괴력을 가지는 무기 수출의 'NSC 4대신 회의' 심의 규정, 무기 수출 결정 국회 문서 통지 의무화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국회 통지가 방지 역할을 제대로 할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과 영국, 이탈리아가 공동 추진 중인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GCAP)으로 개발한 전투기는 전투 중인 제3국에 수출할 수 없다는 제한도 남겼다.
스텔스 성능과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한 초고성능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고성능 무기 수출에 따른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가 무기 수출에 다소간의 제약을 남겨 뒀다고 하더라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 개정에 대한 주변국들의 시선은 '전쟁 가능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우경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2일 열린 자민당 당대회에서 내년 봄 당대회 전까지 헌법 개정안의 윤곽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개헌안에는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조항, 선거구 합구(合區) 해소, 교육 충실 등 4가지가 담길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 자위대 헌법 명기가 실현되면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에 정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자위대는 최근 미국·필리핀이 주도한 다국적 연합훈련 '발리카탄'에 사상 처음으로 본격 참여하기도 했다.
약 1천400명의 전투 병력을 파견한 일본은 지난 17일 해상자위대 함정 이카즈치를 대만해협을 통해 필리핀에 보냈다. 이에 중국이 '군국주의 부활의 신호'라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내각은 총리 공약으로 내세웠던 일본판 CIA(중앙정보국) '국가정보국' 신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7월 국가정보국 출범을 통해 일본 국내·외 정보 수집을 한층 강화해 국내 통치력을 키우는 한편 대외 정보전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21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며 직접 참배에 나섰던 총리 취임 전보다 완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과는 지난해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대립각을 세우고 한국과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가 양국을 모두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전략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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