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차 "북핵포기 조기달성 불가…北과 군축·비확산 대화 해야"(종합)

입력 2026-04-21 17:13
빅터차 "북핵포기 조기달성 불가…北과 군축·비확산 대화 해야"(종합)

비핵화 강조 美 대북전략 중대한 조정 제언…"중간 해결책 필요"

"북핵, 현실적 위협으로 진화…中·러, 대북 제재 무력화"

"핵 있는 北과 전면전 피하려면 '냉정한 평화'가 최선…억지력 강화 필수"

정동영 'CSIS도 구성 핵활동 보고' 언급엔 "그런 보고서 쓴 적 없다" 반박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이유미 송상호 특파원 곽민서 기자 = 미국의 유력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조지타운대 교수)는 21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무기 보유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군축 및 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북미대화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대북 전략·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군비 통제 협상 등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전략 목표를 조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과 장기간 교류한 것은 물론 한때 직접 대북 협상에 참여하며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쳐 온 차 석좌의 이 같은 주장을 두고, 미국 국익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접근법이라는 평가와 사실상의 '북핵 용인' 주장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 석좌는 이날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단기간에 달성 가능한 일이 아니며,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전제를 두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해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보다 즉각적인 성과를 거두고 긴장을 완화하며 지금 당장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대북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전면전(hot war)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냉정한 평화'(cold peace)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예상을 뛰어넘는 핵 개발 성과를 거두며 현재 50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추가로 40∼50개를 더 제조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비축한 상태라고 차 석좌는 설명했다.

또한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해 20여종의 다양한 발사체를 개발한 상태다.

차 석좌는 "지난 30년 사이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은 희박한 가능성에서 현실적 위협으로 진화했다"며 미국의 전략 목표를 북한의 핵무기 해체가 아니라 해당 무기들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즉각적인 목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 전략은 식량·에너지 원조나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일부 핵 양보를 얻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 같은 접근법은 북한의 현재 핵무기 규모 등을 봤을 때 "실패했다"고 차 석좌는 규정했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제재가 중국과 러시아로 인해 무력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북한의 교역이 날로 확대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북러 협력도 강화되면서 대북 경제 제재가 실질적인 효력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현재 미국이 핵 협상을 진행 중인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그는 "북한은 이미 입증된 핵무기 보유국(proven nuclear weapons state)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보복할 능력이 있다"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운반체는 이란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표적화하기 어려운 비공개 장소들에 더 널리 분산돼있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이에 따라 "미국은 비핵화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제 그것이 요원한 목표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냉정한 평화' 구축을 목표로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더 즉각적으로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군비 통제 협정, 핵실험 및 미사일 생산 제한, 위기관리 메커니즘, 타국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술 이전 금지(비확산) 등에 대해 평양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속에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 감축 등에 초점을 맞춘 사실상의 군축·비확산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다만 차 석좌는 이를 위해선 동맹국들과 함께 억지력과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미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시 북한 정권을 파괴할 것임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일본의 해상 이지스 플랫폼과 한국의 지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시스템 간의 원활한 연동, 탄도미사일·저고도 순항미사일·드론의 동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 더 많은 요격 미사일의 공동 생산 등이 필요하다고 차 석좌는 설명했다.

나아가 한미일 세 나라가 집단 방위 선언에 합의해 어느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곧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상적인 방안으로서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한미 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북한과의 협상에 연계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한반도 내 미군 감축"이라며 미국이 지상군 중심 배치를 줄이고 역내 공군과 해군 중심 전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를 북한의 단계적 군축이나 드론 비행금지 구역 설정 같은 협상과 연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미국은 본토 안보를 지키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 갈등 확대를 막기 위한 중간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냉정한 평화'는 결코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절실히 필요한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는 차 석좌는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4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역임했으며 북핵 6자회담의 미국 측 차석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이 인터뷰 내용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도 기고됐다.

한편, 차 석좌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제3의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시를 지목하며 '미 CSIS가 관련 보고서를 이미 공개했다'고 밝힌 데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차 석좌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미 CSIS, CSIS 코리아 체어, CSIS 비욘드패럴렐은 구성 지역 핵시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한다"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정 장관의 엑스 게시물을 직접 링크했다.

앞서 정 장관은 엑스를 통해 "북한 구성 지역에서 핵 개발 활동이 있다는 것은 2016년 미 ISIS 보고서와 국내 KBS 뉴스 보도를 시작으로 작년 미 CSIS 보고서까지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왔다"고 언급했는데, 차 석좌가 이를 부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 CSIS 산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비욘드패럴렐은 지난해 5월 1일 보고서 등에서 북한의 핵무기용 고폭 실험장인 평안북도 구성시의 '용덕동 핵시설'이 최근까지 가동 중인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yu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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