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기업 물류비 상승 등 악재…공급망 전략 재검토도
정유·석화·항공·해운 등, 고유가 직접타격 방어 '분주'
전자·철강, 물류비 상승 고심…조선·건설, 원자재 수급 난항
사태 장기화하면 원자재 수급·생산·판매 전략 조정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 조짐으로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국내 산업계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초고유가' 시대 도래를 예상하며 대비에 나섰다.
중동 가스시설 피격으로 시작된 불길이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국내 산업계의 생산라인과 물류망까지 위협하는 모양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원자재 수급, 생산, 판매 등에 이르는 공급망 전략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 정유·석화·항공·해운 등, 고유가 직접타격 방어 '분주'
19일 재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 상승의 충격이 가장 직접적인 곳은 정유·석화업계와 항공·해운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를 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커지자 대체 수입선 확보에 나서는 한편 설비 가동률 하향도 검토 중이다.
유류비 비중이 영업비용의 최대 35%를 차지하는 항공업계의 수익성 악화도 가시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3천50만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 시 3천50만달러(457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유가가 현재와 같이 이전 대비 50달러 오르면 연간 2조2천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한항공에 이은 2대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1천155만배럴로, 유가 1달러 상승 시 1천155만달러(173억원) 안팎의 손해를 본다.
이에 따라 국내 항공사들이 올 2분기부터 저조한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 부과를 통해 손실을 만회하고 있지만,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실제 여행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정유사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 정부 비축유의 적기 방출, 항공사 초과 유류비 부담에 대한 정부 지원(관세 면제, 세액 공제 등)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상태다.
해운업계는 운임 상승으로 수혜를 보고 있지만 선박 연료인 초저유황유(VLSFO) 가격 급등으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항 기준 VLSFO 가격은 지난달 27일 톤(t)당 522달러에서 전날 1천5달러로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유류할증료 부과를 통해 비용을 화주에 전가하는 방안도 있지만, 일부 선사들은 화주 부담과 수요 둔화 등을 우려해 채택에는 현재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다.
◇ 전자·철강, 물류비 상승 고심…조선·건설, 원자재 수급 난항
중동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던 국내 전자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중동으로 향하는 수출 선박들에는 컨테이너당 평균 수백만원 수준의 전쟁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만개 규모 대형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하면 컨테이너선 1척에 전쟁 할증료만 200억원 넘게 추가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이 마무리된 후에도 호르무즈 해협 안보를 이용 국가가 책임지게 하면 어떨까"라고 하면서 중동 물류비 가중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철강의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석탄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철강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조선업계는 선박용 강재 절단에 쓰이는 특수 가스 '에틸렌' 수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에틸렌은 납사(나프타)를 분해해 생산되는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나프타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수급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와 화학업계가 단기 물량 공급에 나서며 일단 숨통은 틔웠으나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수급 안정화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에틸렌 대체재로 액화석유가스(LPG)가 꼽히지만, 이 역시 수입 의존도가 높고 나프타와 작업 요건이 다르다는 점에서 에틸렌 사용이 선호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건설·건자재 업계도 비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유가·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철강, 시멘트 등 건설 자재 생산비와 장비 운용비, 운송비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 50% 상승 시 국내 건설 생산 비용은 1.06%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토목 건설 생산 비용의 경우 도로시설 2.93%, 도시토목 2.76%, 하천사방 2.19%, 항만시설 2.03%, 농림수산토목 2.03% 등 2% 넘게 상승하며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 것으로 분석됐다.
◇ 사태 장기화시 원자재 수급·생산·판매 전략 조정 불가피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원자재 수급, 생산, 판매 등 모든 공급망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자동차업계는 현재의 탈(脫) 내연기관 흐름 속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 중점 정책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고유가는 총소유비용(TCO)의 상승을 초래해 연비 효율이 낮은 대형차와 고급차는 수요가 위축되지만, 소형차와 친환경차의 선호는 급격히 상승한다.
현재는 고유가 상황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 자동차업체인 현대차의 중동 시장 점유율이 현재 10%에 달해 현대차 생산 및 판매 전략도 조정이 예상된다.
중동에 생산기지를 둔 전자업체들도 경영 불확실성에 공장 가동률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에 따라 중동 지역의 수요가 급감하고, 생산기지로의 원자재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산기지 운영에 필요한 시설 및 인력 유지 비용이 고스란히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집트에서 TV, 휴대전화를 생산 중이고, 튀르키예에서도 휴대전화 공장을 운영 중이다. LG전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전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조성흠 김동규 김보경 홍국기 임성호 홍규빈 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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