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사절벽' 석화업계 한 달 못 넘긴다…산업계 연쇄 충격 우려

입력 2026-03-19 11:17
'납사절벽' 석화업계 한 달 못 넘긴다…산업계 연쇄 충격 우려

가동률 최대 30%P↓…"이미 가동 중단 임계점 도달"

재고 최대 한달분 미달, 이후 연쇄 셧다운 우려

에틸렌 공급 중단 때 산업 전체 및 물가로 충격 확산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한지은 강태우 기자 = 중동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핵심 원료인 납사(나프타) 부족으로 정기보수 일정을 앞당기고 공장 가동률을 낮추며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업계가 보유한 재고가 불과 2~3주 분량인 탓에 한 달 뒤면 업계 나프타분해시설(NCC)이 줄줄이 가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NCC 가동 중단이 현실화할 경우 '산업의 쌀'로 불리는 중간재 생산이 끊어지면서, 충격이 플라스틱과 섬유,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산업 전체를 강타할 수 있다.



19일 석화 업계에 따르면 중동 사태 이후 납사 수급 차질과 가격 인상으로 인해 주요 업체들이 줄줄이 NCC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사태 전인 지난달에는 80% 수준이던 업계 평균 NCC 가동률은 최근 60%대 후반으로 크게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NCC 가동률을 기존 80%대에서 70%대로 낮췄고, LG화학도 대산과 여수 NCC 가동률을 50~60%대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천NCC도 90%에 달하던 가동률이 60%대로 최대 30%포인트 가까이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NCC 가동률이 60%대면 운영 효율과 설비 안정성 문제로 가동 중단을 검토해야 하는 수준으로, 업계 전체가 이 같은 임계점에 도달한 셈이다.

그런데도 업계는 줄어든 납사 물량에 맞춰 생산을 줄이는 식으로 가동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원료 공급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가동률을 낮추는 것은 재고를 최대한 오래 쓰기 위한 속도 조절"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정기 보수를 통해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연례적으로 비수기인 4월 중순에 진행하는 정비 보수를 2주가량 앞당겨 이달 말 시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여수에 있는 NCC가 한 달에서 최장 두 달간 보수를 거치며 생산을 멈춘다.



보수 기간 여유가 생긴 재고는 다른 공장으로 옮겨 가동 기간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이번 중동 사태와 납사 수급을 고려해 정기 보수 일정을 약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계약 미이행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항력' 선언도 이어질 조짐이다.

불가항력은 전쟁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제품 공급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면책을 위해 발동하는 조치다.

이달 초 여천NCC가 처음으로 불가항력을 선언한 데 이어 롯데케미칼, LG화학 등이 일부 제품에 대한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폴리올레핀(PO) 계열 일부 제품에서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객사에 공지했다.

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동 중단의 '데드라인'은 머지않아 닥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가동률을 낮춰 대응하고 있지만, 원료가 아예 끊기면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생산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별로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재고가 적은 곳은 2주 정도, 많은 곳은 3주 정도 분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시차가 있을 수는 있어도 한계는 분명하다. 한 달 이후로는 설비 가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NCC 가동 중단은 석화 업계를 넘어 국내 산업 전반과 소비자 물가에까지 충격파를 미칠 수 있다.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납사는 석화 산업에 필수적인 기초 원료로, 이를 활용해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고무, 화학제품의 원료로서 '산업의 쌀'로 불린다.

따라서 NCC 중단으로 에틸렌 공급이 끊어지면 플라스틱 소재 제품과 섬유 제품은 물론, 자동차와 전자 부품, 건설자재, 타이어 등 생산 라인까지 멈출 수 있다.

포장재와 배달용기 사용이 많은 식품 산업, 섬유를 쓰는 의류 산업까지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물가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 대책을 통해 납사를 수급한다고 해도 가격 급등으로 인한 영향이 산업 전체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납사를 경제안보품목으로 한시 지정하고, 대체 수입선 확보와 수출 제한 등 조치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불황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중동 사태까지 겹치면서 업계의 대응 여력이 극도로 줄어들었다"며 "경영 관점으로는 가동 중단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국내 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도 고민할 수밖에 없어 몹시 난처하다"고 말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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