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압박 속 중남미에서 짐 싸는 쿠바 의사들
美 "의료진 파견은 쿠바의 외화벌이 수단"…중남미 곳곳 '의료 공백' 비상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우수한 실력으로 중남미에서 명성을 떨치던 쿠바 의료진이 짐을 싸서 속속 귀국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등 떠밀린 중남미 국가들이 쿠바 의료진을 내보내면서다.
스페인 EFE통신은 12일(현지시간) 400여명의 쿠바 의료진이 과테말라에서 떠나게 되면서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쿠바 의사들의 퇴출은 과테말라 정부가 지난 28년간 유지해 온 쿠바와의 의료 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한 데 따른 결과다.
쿠바 의료진은 허리케인 미치가 과테말라를 휩쓸며 약 3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인 1998년 처음으로 과테말라에 파견됐다.
인구 대비 의사 수가 현저히 적은 과테말라에서 쿠바 의료진은 그간 필수 의료 부문에서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정부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오지, 산간 지역, 빈민가 등지의 공립 병원에서 맹활약했다.
최근 수술을 받은 마리아 알리시아 데 피눌라는 EFE와의 인터뷰에서 쿠바 의사들의 철수에 대해 "상황이 매우 유감스럽고 슬프다"며 "그들은 과테말라 국민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줬다"고 안타까워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내달 12일까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의사 333명을 포함한 412명의 쿠바 의료진을 과테말라 전문 인력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낙관과는 달리 현실의 장벽은 만만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독립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과테말라 보건부의 지역 내 예산은 낮은 수준이고, 1천800만명의 인구를 돌보기에는 인력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과테말라 수도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비야 누에바 안과 병원과 같은 공공 의료 센터에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건 과테말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쿠바 의료진의 퇴출은 중남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온두라스에서 160여명의 의료진이 퇴출당한 데 이어, 자메이카 약 300명, 파나마 100여명, 도미니카공화국 80여명, 가이아나 200여명 등이 쿠바로 돌아갔거나 돌아갈 예정이다.
도미노처럼 번지는 쿠바 의료진의 퇴출은 미국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쿠바 의료진 파견을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하며 이들을 수용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 원조 삭감 등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은 쿠바 의료진이 현지에서 벌어들인 임금의 80% 이상을 정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쿠바 정부는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 의료진을 파견하면서 연간 60억달러(약 9조원) 이상을 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자금이 쿠바 정권 유지 비용으로 쓰인다고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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