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테크+] "까마귀는 늑대를 뒤쫓지 않는다…그들의 사냥터를 기억할 뿐"
국제연구팀 "옐로스톤 늑대·까마귀 2년반 추적…까마귀 공간기억·항법 능력 활용"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까마귀는 동물 사체가 있는 곳을 어떻게 빨리 찾아낼까?
청소동물인 까마귀는 늑대를 따라다니며 동물 사체를 찾는다는 통념과 달리 공간 기억과 항법 능력을 활용해 늑대가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기억했다가 주기적으로 그곳을 찾아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 연구소(MPIAB)와 오스트리아 빈 수의학대, 미국 워싱턴대 공동 연구팀은 13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 늑대와 까마귀에 GPS를 부착해 2년 이상 추적하는 연구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논문 제1 저자 겸 교신저자인 빈 수의학대 마티아스-클라우디오 로레토 박사는 "까마귀는 늑대가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기억하고 먼 곳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며 "이 연구는 청소동물들이 먹이를 찾을 때 매우 정교한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늑대 무리가 먹잇감을 몰아 사냥하면 까마귀가 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이 자주 관찰되면서 까마귀가 먹이를 얻기 위해 늑대를 따라다닌다는 통념이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약 70년 동안 사라졌다가 1990년대 중반 재도입된 늑대에 주목했다. 공원 내 늑대의 약 4분의 1에는 추적용 GPS 목걸이가 부착돼 있어 이동 경로를 실시간 추적할 수 있다.
늑대 재도입 후 늑대를 추적해온 댄 스탤러 박사는 "까마귀가 이동 중인 늑대 무리 바로 위를 날거나, 늑대가 먹잇감을 쓰러뜨릴 때 바로 뒤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까마귀가 늑대를 따라다닌다는 통념이 생겼지만 검증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캠프장 근처에 미끼로 위장한 정교한 덫을 설치해 야생 까마귀 69마리를 포획해 작은 GPS 추적 장치를 부착한 다음 2년 반 동안 추적하며 이들의 움직임을 늑대 20마리의 이동 데이터와 비교 분석했다.
까마귀와 늑대가 가장 자주 함께 나타나는 겨울을 중심으로 까마귀는 최대 30분 간격으로, 늑대는 최대 1시간 간격으로 GPS 위치를 기록하고, 엘크와 들소, 사슴 등 늑대가 먹이를 사냥한 장소와 시점에 대한 자료도 조사했다.
그 결과 2년 반 동안의 추적에서 까마귀가 늑대를 1㎞ 이상 또는 1시간 이상 따라다닌 명확한 사례는 단 한 차례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 데이터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까마귀는 늑대를 오랫동안 직접 따라다니기보다는 늑대의 사냥이 자주 일어나는 특정 지역을 반복해 방문하는 이동패턴을 보였다.
까마귀 한 마리는 정확한 사냥 시점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에 최대 155㎞까지 비행하며 사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향해 똑바로 이동했다.
위치 측면에서 보면 늑대의 사냥은 평평한 계곡 바닥처럼 사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지형 특징이 있는 장소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고, 까마귀는 늑대들의 사냥이 드물었던 지역보다 자주 일어났던 지역을 훨씬 더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까마귀가 과거 사냥 밀도가 높았던 지역을 예측 가능한 먹이 탐색 장소로 간주하고 공간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까마귀가 먹이를 찾을 때 포식자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기보다는 항법 능력과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워싱턴대 존 마즐러프 교수는 "까마귀는 예리한 감각과 과거 먹이 위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넓은 지역에 걸친 다양한 먹이 기회를 선택할 수 있다"며 이 연구는 청소동물의 먹이 탐색 능력이 오랫동안 과소평가돼 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 출처 : Science, Matthias-Claudio Loretto et al., 'Ravens anticipate wolf kill sites across broad scales', http://dx.doi.org/10.1126/science.adz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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