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중동의 불길, 아프리카 시험대…한국도 '상생 건축'
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정치의 시선은 다시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물류, 식량과 금융, 외교와 안보가 얽힌 초연결의 시대에 중동의 충격은 결코 중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여파는 우리도 체감하고 있다. 주가는 흔들리고 유가는 치솟았다. 주유소 가격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홍해와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 해협,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은 국제유가를 끌어올렸다.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공급 불안은 세계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인접한 아프리카 대륙으로 번져 정치와 경제는 물론 시민의 일상까지 뒤흔들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U)은 정전과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충돌이 아프리카 대륙에 단일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54개국은 산유국과 비산유국, 해양국과 내륙국, 그리고 전략적 위상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하나의 동일한 위기라기보다, 각국의 조건과 위치에 따라 상이한 압박과 기회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복합 충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그에 연동된 생활비 부담의 확대다. 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석유와 정제연료를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흡수할 재정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연료비와 운송비, 전력비가 함께 상승한다. 이는 다시 식품 가격과 생계비 전반의 인상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외부 충격을 완충할 사회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나이지리아, 앙골라, 알제리, 리비아와 같은 산유국은 국제유가 상승의 반사이익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 중동의 공급 불안이 장기화할수록 아프리카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자원 수출 확대가 곧바로 국가적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 인프라의 한계, 정제 능력의 부족, 환율 불안, 재정 누수와 부패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국가는 더 많은 수출 수입을 올리더라도 시민 다수의 삶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반대로 비산유국과 저소득 수입국들은 수입물가 급등과 재정 악화라는 이중의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는 물가 상승을 감수할 것인지, 보조금을 확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높은 청년실업, 취약한 산업기반, 통화가치 하락, 외채 부담이 겹쳐 있는 상황에서 경제 불안은 곧 사회 불안과 정치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충돌은 단순한 외교적 사건이 아니라, 아프리카 각국의 통치 역량과 국가 회복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정학적 파장 역시 만만치 않다. 이란의 유조선 공격과 위협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고,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역에서도 이란을 지지하는 후티 반군의 공격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홍해와 수에즈 운하 항로의 차질로 이어지면서 동아프리카 국가들에 물류비 상승과 공급 지연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주요 해운사들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우회 운항은 단순한 항로 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곧 운송 기간의 연장, 보험료 상승, 운임 인상으로 연결된다.
케냐, 탄자니아, 지부티, 에티오피아와 같은 국가는 수입원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을 동시에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과 케이프타운 등 주요 항만은 물동량 증가에 따른 과부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아프리카가, 정작 글로벌 위기의 비용을 가장 먼저 떠안는 역설적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와 관광, 에너지와 금융 흐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중동발 불안의 충격을 어느 국가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리비아와 알제리 역시 에너지와 안보, 대내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외부 충격에 따라 국내 정치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태도 변화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확전 자제와 국제법 준수를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과 안보 공조를 강화하며 중동 불안정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에너지 공급선 안정, 난민 및 이주 통제, 해상교통 안전이 더욱 중시될수록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의 안보 이해와 미국의 대(對)이란 압박, 그리고 자국의 생존 전략 사이에서 부담되는 외교적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북아프리카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교량이자, 에너지·해상물류·이주 문제가 교차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단기적 진영 논리에 휩쓸리기보다, 긴 호흡의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아프리카에 '누구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떻게 버틸 것인가'를 묻고 있다. 실제로 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최근 국제질서의 다극화 속에서 특정 강대국 진영에 일방적으로 기대기보다, 전략적 균형 외교를 지향해 왔다. 확전 방지와 국제법 준수, 대화를 촉구하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는 결코 소극적이거나 약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외교의 언어에 가깝다.
더 나아가 외부 충격을 견디는 회복력을 근본적으로 키워야 한다. 에너지 수입국은 연료 비축과 공급선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산유국은 단순 수출에 머무르지 않고 정제와 저장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가격 상승이 국내 불안으로 역류하는 구조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적극 활용해 15% 수준에 머무는 역내 교역을 확대하고, 가치사슬을 강화해야 한다. 외부 충격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내부 연결이 단단할수록 충격을 흡수하는 힘은 커진다.
이번 위기는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에 새로운 지정학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할수록 국제사회는 아프리카라는 대체 공급망과 새로운 해상 네트워크에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알제리와 나이지리아, 앙골라, 리비아, 모잠비크,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과 같은 자원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남아공과 이집트,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케냐와 같은 외교적 중견국들의 존재감 역시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조건이 있다. 제도와 인프라, 정책의 일관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정학적 격변은 또다시 외부 세력의 이익만 확대한 채, 아프리카 내부에는 산업화 지연과 사회적 불안정이라는 오래된 악순환만 더 깊게 남길 수 있다.
결국 이번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아프리카에 남기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제질서의 불안은 더 이상 다른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일상과 정치, 경제를 동시에 흔드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어떤 국가는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일부 국가는 반사이익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든 외부 충격에 반복적으로 휘둘리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면 미래의 불확실성 또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대응 역시 중요하다. 한국 또한 이번 충돌을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다.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중동의 불안은 곧바로 에너지 안보와 산업 안정성, 물가와 공급망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수에즈-홍해 축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물류 다변화와 해상운송 위험 관리 체계를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기조 위에서 항해의 자유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실익 중심의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이 위기를 대(對)아프리카 전략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아프리카를 단순히 자원이 많고 인구가 많은 대륙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유국과 광물자원국, 물류 거점국들과의 협력을 '에너지-인프라-개발협력'의 패키지로 구체화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원칙 없는 줄서기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회복력, 그리고 상호 호혜적 경제 블럭 구축을 함께 모색하는 접근이야말로 한국이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
지금 아프리카에 필요한 것은 전쟁의 향방을 예측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국가 역량과 지역적 연대, 그리고 긴 호흡의 전략을 구축하는 일이다. 아프리카에 "비는 한 지붕만 적시지는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중동에서 시작된 불안의 비는 결국 아프리카의 지붕 위에도 떨어지고, 우리 지붕 위에도 떨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비를 탓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견딜 수 있는 더 단단한 집을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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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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