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데뷔 40년 조수미 "음악, 사람을 바꾸는것…받은 사랑 나누고파"

입력 2026-03-11 07:23
[인터뷰] 데뷔 40년 조수미 "음악, 사람을 바꾸는것…받은 사랑 나누고파"

런던서 40주년 기념공연…"아리아부터 우리 가곡까지 음악 여행"

"나를 만든 인연은 부모님·카라얀…사랑받았던 만큼 젊은 인재 키울 것"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40년이 어떻게 이렇게 지나갔을까요? 인생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더니요. 제가 40년간 매일매일 일기를 써왔는데요, 지금 그걸 다시 읽어 보면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63)는 오는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카도건홀에서 열리는 '매드 포 러브(Mad for Love) - 40주년 기념 콘서트'에 앞서 10일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조수미는 이번 공연 프로그램을 자신의 40년 음악 여정을 돌아볼 수 있도록 장르별로 다양하게 구성했고,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인재 양성을 염두에 두고 젊은 미국 바리톤 에드워드 넬슨을 게스트로 초청했다고 소개했다.

"바로크부터 오페라 아리아, 우리 가곡까지 앉아서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짰어요. 제가 예전에 대회 심사를 맡았을 때 우승했던 재능 있는 젊은 아티스트도 같이 무대에 서고요."

조수미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극장에서 '리골레토' 여주인공 질다 역을 맡은 이후로 40년간 쉬지 않고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왔다.

런던과의 인연을 묻자 조수미는 아직 선화예고 학생이던 1970년대 말 런던을 방문하게 된 아버지의 일화를 들려줬다.

아버지는 당시 세계적인 극장인 코벤트가든의 로열오페라하우스를 무작정 찾아 '내 딸이 여기서 데뷔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물었다고 한다. 경비는 극장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불러왔고 그가 내려와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지금은 어리니 공부를 좀 더 하고 나중에 오디션을 보도록 하라'고 일러줬다.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 조수미는 결국 30세가 되기 전에 로열오페라하우스를 포함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모두 선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됐다.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공항에서도 남한인지 북한인지 캐묻고 그랬어요. 당시에 동양권에서 유럽에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오페라는 그게 좀 더 심했어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공연이다 보니 악기 연주자보다도 외모를 좀 더 따지는 분위기였죠."

척박한 환경에서 조수미는 일종의 개척자가 됐다.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했고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 주어지는 황금 기러기상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았으며 비(非)이탈리아인으로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에서 최고 등급의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 훈장까지 받았다.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 엄청난 노력,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등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고 여기에 '인복'이 더해져 이뤄낸 성취라고 설명했다. 생애 가장 중요한 인연으로 뱃속에 품고 있던 10개월 내내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들려주며 운명을 결정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꼽았다.

"어머니가 당신 옷은 못 차려입으면서도 저에겐 피아노, 발레, 대야금 등 있는 대로 시키셨어요. 저는 성악가가 안 되면 큰일 날 사람이었어요. 운명이 이미 딱 결정이 돼 있었죠."

부모님 다음으로는 유럽에서 프리마돈나로서 길을 열어준 지휘자 헤르베르트 카라얀을 꼽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은 말년에 20대 초반의 신예 조수미를 만나 그를 발탁했다. 조수미의 별명으로 유명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표현도 카라얀이 쓴 것이다.

"그분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너무 아껴주셨고 가족 같았어요.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도 뵌 사람이 저고요. 제가 그렇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요.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개인 레슨을 해주시면서도 제가 돈이 없다는 걸 아니까 돈을 하나도 안 받으셨어요."

젊은 예술가를 키우고 길을 열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202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를 출범했다. 격년제 행사라 올해 2회째 열린다.

"콩쿠르가 유학 시절의 나를 살렸거든요. 그래서 우리 콩쿠르에는 상금을 꽤 높이 책정했죠. 1∼3위 합해서 8만유로예요. 상만 주는 게 아니라 무대에 설 기회도 주고 이걸 통해 한국인, 동양인 예술가들이 해외로 더 나가도록 돕고요. 그게 사회적인 거죠. 우리가 음악을 통해서 뭘 하려는 건가. 음악이 왜 있는 건가. 음악으로 사람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예술가들에게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조언은 무엇인지 질문에는 '하나만 파라'는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멀티'가 돼야 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음악은 제대로 하려면 전문적으로 하나만 파야 해요. 그게 된 다음에 다른 걸 해야죠. 젊은이들은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지름길은 없어요. 어려운 게 오면 그걸 다 해내야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거죠. 예술은 사실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60대가 된 조수미는 여전히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예술가로서 스스로 영감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술에 관해서는 나이가 들면서 더 둥글어지는 게 아니라 더 날카로워진다고도 했다.

"연습을 해야 안심이 돼요. 경험이 있다는 건 안전하다는 것이잖아요. 근데 사실 그게 가장 안전하지 않고 위험한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 더 둥글둥글해질 줄 알았는데요. 카라얀이 80대 나이에 저희 무대를 보면서 하나하나 찍어 지적하는 걸 보고 왜 그러시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보니 저도 그렇게 됐더라고요."

조수미는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현역 성악가다.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은 연간 2∼3개월쯤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외국에서 보낸다. 조수미에게 한국이란 어떤 곳인지 묻자 그는 '나의 뿌리'라고 답했다.

"내가 태어나 교육받은 곳,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에요. 무대에 들어서면 들리는 박수 소리가 가장 따뜻해요. 그래서 한국에서 투어나 콘서트를 준비할 때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쓰게 돼요. 한국에선 더 다양한 음악을 하고 팬들도 많아서 사랑이 정말 깊습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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