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스라엘서 카이로로 16시간 피란길…"너무 무서웠다"

입력 2026-03-04 10:43
수정 2026-03-04 11:37
[르포] 이스라엘서 카이로로 16시간 피란길…"너무 무서웠다"

현지동포 등 113명, 육로로 국경넘어 이집트 카이로 무사도착

"정세 빨리 안정되면 돌아가겠지만 장기화하면…" 걱정 태산

주이집트 한국대사관·한인회 등 대피 돕고 숙소 등 알선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일단 안전하다는 이집트로 대피해 안심이 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4일(현지시간) 새벽 1시간 조금 넘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인 마디의 빅토리아 광장 인근.

지난달 28일 이란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의 포화를 피해 국경을 넘은 이스라엘 체류 국민과 동포, 단체관광객 등 113명을 태운 4대의 대형 버스가 긴 여행 끝에 목적지 카이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찾아 돌아서는 이들의 얼굴은 거의 꼬박 하루가 걸린 이날 여행의 피로와 함께 위험지역을 벗어났다는 안도감,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전쟁이 터지면서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지에서 방공호에 숨어 지내던 이들은 분쟁이 길어지고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육로로 국경을 넘었다.

이른 아침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지의 집과 숙소에서 출발한 이들은 시나이반도 동쪽 끝에 위치한 타바 국경검문소와 수에즈운하 검문소를 통과하며 피곤하고 긴 여행을 했고, 결국 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카이로에 당도했다.

어머니, 형제 등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는 예루살렘 거주 교민 A군(19세. 대학생)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방공호로 대피해 생활했다"면서 "어제는 이란이 쏜 미사일을 요격하는 폭발음이 동네에서도 요란하게 들려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아침 6시30분에 집에서 나와 8시에 버스를 탔다"며 "국경을 통과하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려 지루하고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여행차 이스라엘에 왔다가 발이 묶인 B씨(29세)는 "전쟁이 시작된 날 텔아비브에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곧바로 방공호로 대피했는데 아이언돔이 미사일을 요격하는 소리에 놀라고 너무 무서웠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이 집에서 나와 카이로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6시간 이상이다.

이집트 국경부터 카이로까지 거리는 대략 600㎞ 정도여서 평소라면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지만, 국경에 피란객이 몰리면서 출입국 절차가 길어졌다는 게 외교부 신속대응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속대응팀 관계자는 "이스라엘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타바 검문소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며 "그런데도 피란 희망자들을 안전하게 카이로까지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안전한 이집트로 피신했지만,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예측할 수 없고,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편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불안은 여전하다.

이스라엘 교민 A군은 "정세가 안정되고 이스라엘 영공이 열리면 비행편으로 최대한 빨리 이스라엘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곳에 잠시 체류하다가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객 C씨는 "예정대로라면 전쟁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귀국 비행기를 탔어야 했다"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귀국 비행편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들 외에도 전쟁 발발후 이스라엘에서 활동해온 대기업 주재원 등 200여명이 개별적으로 타바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은 국경을 넘어 피신한 사람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고 숙소를 예약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또 주이집트 한인회와 교민들은 홈스테이를 요청한 69명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집트 한인회는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 때도 이스라엘에서 넘어온 피란민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었다.

박재원 주이집트 한인회장은 "전쟁의 포화 속에 이스라엘 교민과 체류자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카이로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조속히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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