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 임박…'전기차 수출비중 83%' 車업계 타격 우려

입력 2026-03-03 11:55
'유럽판 IRA' 임박…'전기차 수출비중 83%' 車업계 타격 우려

EU, '중국산 겨냥' IAA 공개 예정…원산지 요건 등 담길 듯

현대차그룹, 작년 유럽에 45만대 수출…"한-EU FTA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홍규빈 윤민혁 기자 = 유럽의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전략이 담긴 '산업 가속화법'(IAAㆍIndustrial Accelerator Act) 공개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산 저가 수입품에 맞서 유럽 산업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추진되는 법이지만 엄격한 원산지 요건이 도입될 경우 전기차를 비롯한 국내 산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해 경쟁국 대비 협상 우위를 확보하는 한편, 기업 차원에서는 현지 공급망 강화를 비롯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3일 한국무역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오는 4일(현지시간) IAA 제정안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EU 원산지 요건 도입을 통해 역내 생산과 공급망 강화를 목표로 하며 공공조달, 정부경매, 공공지원에서 전략 제품을 대상으로 핵심 부품의 일정 비율이 EU 또는 유럽경제지역(EEA) 내에서 제조·생산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을 지원한 것과 유사하게 유럽도 보호주의에 입각해 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조처로 평가된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야심차고, 효과적이며 실용적인 산업 정책 없이는 유럽 경제가 단순히 경쟁자들을 위한 놀이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 미국에는 '바이 아메리카'가 있고, 대부분 다른 경제 강국들도 자국의 전략적 자산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다면 우리는 왜 안되는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원산지 요건은 EU 집행위원회가 마련할 것으로 전망되며 EU와의 일부 제3국에 대한 예외 적용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무역협회는 국내 업계 의견을 수렴해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제3국 경제단체와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IAA 제정으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국내 완성차업계다.

IAA가 최근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업체를 견제하는 성격인 데다, IAA를 통한 철강 규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EU와 EFTA, 영국 시장에서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와 BYD(비야디)는 각각 30만6천대, 18만8천대를 판매했다. 특히 BYD는 268.6%에 달하는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EU에서 70% 이상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기차·하이브리드차·연료전지 차량 등을 사는 구매자가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차량이 EU 내에서 조립되고, 가격 기준으로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의 70%가 EU 내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내용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 범위에서 배터리가 제외된 것은 중국 등 해외 배터리를 많이 쓰는 폭스바겐, 벤츠 등 유럽 브랜드를 위한 조처로 보인다"며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업계에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원산지 요건 강화가 현실화할 경우 유럽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는 현대차·기아의 유럽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유럽 전기차 판매량 대부분을 국내 생산·수출을 통해 조달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는 작년 한 해 유럽 시장에서 18만3천912대를 판매했는데 그 중 15만2천190대(82.8%)는 한국에서 수출된 물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으로 선적하는 현대차그룹 전체 물량은 45만여대에 이른다.

기아 유럽법인 관계자는 "어떠한 '메이드 인 유럽' 프레임워크라도 통합된 글로벌 가치 사슬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명확하고 실행 가능하며 경쟁력 중심적인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유럽 소비자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FTA 및 관세동맹이 적절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통상당국과 정부 각각의 차원에서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IRA를 유럽 방식으로 접목하고 모방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면서 "미국은 자국 내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해 투자를 유도했다면 IAA는 탄소중립 등 내용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에 FTA 상대국에 대한 내용이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한-EU FTA를 통해 경쟁국 대비 협상의 우위를 가져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FTA가 이 규범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유럽도 미국을 따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흐름이어서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현대차·기아는 유럽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고 중동, 동남아, 남미 등 새로운 시장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유럽이 중국 자동차의 전 세계적인 진출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의 현지 생산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ing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