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사망] 베네수 이어 이번엔 이란…역대 美 '정권개입' 사례는
1953년 이란 '아약스 작전'부터 중남미·중동 등서 끊임없는 군사개입
쿠바 피그스만 참패·아프간 철군 등 뼈아픈 역효과 사례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공습으로 37년간 철권통치를 펼쳐온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눈엣가시 같은 타국 정부를 겨냥한 미국의 뿌리 깊은 '정권 개입' 역사가 중동의 화약고 한가운데서 가장 폭발적인 형태로 재현된 것이다.
이른바 '불량 국가'의 지도부를 제거해 친미 정권을 세우거나 안보 위협을 원천 차단하는 미국식 무력 개입은 냉전 시대부터 여러 차례 반복돼 나타났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기습적으로 군대를 투입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고 미국으로 압송한 작전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주의가 부활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이었다.
28일(현지시간) 하메네이 사망으로 국제사회는 미국의 해외 정권 개입 사례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더욱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 이란과 질긴 악연…'뒷마당' 중남미에선 정권 교체 실험
특히 이란은 미국과 악연이 깊은 국가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영국 정보기관 MI6와 합작해 이른바 '아약스 작전'을 벌였다.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 정권을 막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친미 성향의 팔레비 국왕을 권좌에 복귀시킨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서방의 석유 이익을 지켜낸 성공적인 공작으로 보였으나, 이는 이란 내부에 강력한 반미 정서를 뿌리내리게 했다.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정체제의 강경 반미 정권이 수립되는 핵심적인 토대가 됐다.
미국은 2020년 1월에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솔레이마니 암살 작전 역시 당시 1기 집권기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미국의 정권 교체 공작은 이른바 '뒷마당' 격인 중남미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
CIA는 1954년 과테말라에서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시켰다. 이 정권이 추진하는 토지 개혁이 미국 자본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1973년 칠레에서는 CIA의 막후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집권한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을 흔들기 위해 우파 반군인 '콘트라'에 자금을 대던 미국의 비밀 공작은 1986년 이른바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만천하에 폭로됐다.
미국이 적성국이던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아 그 수익금으로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이 사건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아넣으며 미국 국내 정치에도 큰 후폭풍을 불러왔다.
1989년에는 2만4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 독재정권을 축출했다. 당시 미국은 마약 카르텔 연루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투항해 미국 법정에서 4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확고한 결의'(Operation Absolute Resolve) 작전을 감행, 철권 통치자였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했다.
◇ 이라크·리비아의 교훈…독재자 제거가 권력공백·혼란 부르기도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의 정권 개입은 진화한 형태로 이어졌다.
미국은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고, 2011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을 주도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다.
하지만 폭압적인 독재자를 제거하면 민주주의가 피어날 것이라는 미국의 기대가 항상 희망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탄탄한 사후 대책 없는 정권 붕괴는 권력 공백을 낳았고, 이는 종파 간 내전과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테러 조직이 창궐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공작이 실패로 끝난 사례도 있다.
냉전 시대인 1961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피그스만 침공'은 CIA가 훈련시킨 망명객들이 쿠바군에 패하며 수포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카스트로의 권력 기반을 다져줬을 뿐만 아니라, 쿠바가 소련과 밀착하게 만들어 인류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다.
미국은 9·11 테러를 계기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군은 오사바 빈 라덴 제거에는 성공했지만, 20년 만인 2021년 철수하며 다시 탈레반에게 정권을 내주기도 했다.
◇ '국제법과 충돌' 지적도…하메네이 사망, 논쟁 이어질 듯
미국의 이 같은 개입 사례들은 종종 국제법과 충돌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엔 헌장은 "국가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미국은 자위권, 테러 대응, 인권 보호 등의 명분을 들어 무력 개입을 정당화해 왔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국제법 위반 논란이 발생했다.
CIA와 같은 정보기관이 비밀 공작을 통해 정권 붕괴를 유도한 사례는 공개되지 않은 운영 방식과 책임 문제를 둘러싸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정권 개입 사례들은 냉전 시대의 공산주의 견제, 에너지 자원 확보, 테러리즘 대응, 민주주의 확산 등의 다양한 명분과 연결돼 있다.
하메네이 사망으로 이어진 미국의 이번 이란 공격은 군사적 충돌을 넘어 국제법·안보 질서 재정립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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