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4년] 최악의 전쟁, 지루한 협상…희망의 빛은 언제 오나
미국 중재로 3자 협상까지 열렸지만 우크라·러 영토 등 쟁점에 팽팽
美, 종전협상 6월로 시한 제시…트럼프 압박 속 '더티 딜' 우려 여전
양측 사상자 200만명 관측…러 공세강화, 우크라 전력난 등 혹독한 겨울
(로마=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 오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한 지 만 4년이 되지만 전쟁의 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종전 협상은 미국의 강력한 중재로 계속되고 있지만 영토 등 핵심 쟁점에 매여 교착 상태다. 중간선거에 가까워진 미국이 최근 타협을 종용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협상 뒤로 폭격을 퍼부으며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후방 도심까지 타깃이 되면서 민간인 피해 규모는 전쟁 중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그린란드 사태로 인한 미국·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균열 노출과 여기에 더해 이란, 베네수엘라 이슈 등으로 종종 우크라전 이슈가 '실종'되는 상황은 우크라이나로서는 또 다른 악재다. 러·우크라 갈등이 종전 아닌 휴전으로 남아 유럽 안보의 구조적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송환 문제는 우리 외교당국의 과제다. 종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강제 송환을 요구하면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
◇ 공전하는 종전 논의…영토 쟁점 두고 극한 대치
4년간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사실상 전무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과 동시에 종전 협상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양측은 튀르키예, 제네바 등에서 대면 협상을 이어갔다.
협상은 전쟁 포로 교환 등 인도주의적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특히 도네츠크·루한스크 영토 소유를 둘러싼 대치 국면은 1년이 넘도록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주)을 넘기라고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영토 문제는 물러설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맞서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구에도 구체화하지 못하는 안보 보장안은 종전 논의의 또 다른 난제다.
지난 달 우크라이나 동맹국 연합체인 '의지의 연합'이 다국적군의 우크라이나 배치에 합의했지만 독일·이탈리아 등 상당수 국가가 군사 파견에 반대하면서 빛이 바랬다.
우크라이나는 궁극적인 안전 보장을 위해 조기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절차적 문제와 헝가리 등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다국적군의 우크라이나 주둔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가 전쟁 이전부터 강하게 반대해 온 협상 불가 의제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미온적 태도를 질타하며 미국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미국 역시 안전보장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달 유럽의 다국적군 배치 합의 때도 미국은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는 립서비스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지원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한편으로 미국이 전폭적인 안전보장을 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협상력 키워 오히려 조기 타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간선거 전 협상 성과를 원하는 미국에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미국이 중재하는 3자 협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지난 17~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 번째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협상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났다.
◇ 우려스러운 우크라이나…"왜 우리에게만 양보 말하나"
미국이 협상 전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더티 딜(dirty deal) 우려도 여전하다.
미국은 이달 초 두 번째 3자 협상이 끝난 뒤 협상 시한을 6월로 제시하며 종전 협상을 미국의 시간표에 꿰맞췄다. 미국은 11월 대통령 중간선거를 치른다.
미국의 타협 종용에 먼저 속이 타는 건 전후방 모두에서 사기가 크게 떨어진 우크라이나다.
군 당국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의 탈영병은 지난달 기준 약 20만명, 병역 의무 기피자는 200만명에 달한다. 혹한기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집중 공격에 따른 최악의 난방·전력난으로 시민들의 피로감도 커진 상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미국은 종종 양보라는 주제를 꺼내 드는데 지나치게 자주 그 양보가 러시아가 아닌 오로지 우크라이나의 양보라는 맥락에서만 이뤄진다"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이런 틈을 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등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가 지난달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전달의 배에 이르는 약 481㎢로 전쟁 시작 이후 가장 넓었다.
우크라이나보다 상대적으로 사정은 낫지만 러시아의 경제·병력 사정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작년 12월 벌어들인 원유·가스 부문 수익은 국제사회 제재 여파로 1년 전의 49%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면 국방 부문 예산은 작년 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첫 1천490억달러(약 216조원)에 육박하며 적자 폭을 키웠다.
우크라이나 전황 분석 단체인 '프론텔리전스 인사이트'는 러시아군 탈영률이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모병 시스템은 보상 지원 예산이 바닥나면서 제대로 운영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더 큰 파국을 향해 서로 치달리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종전 압박을 더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압박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에 대한 제재성 관세 25%를 철회했고, 이는 종전을 위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차원으로 풀이된다.
특히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협상에 임하는 모습을 취하면서도 영토, 우크라 안전보장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며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사상자 200만명 이를 수도
4년을 이어온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무력 충돌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양측의 사상자는 200만명에 육박한다.
러시아군 사상자는 총 120만명으로 추정된다.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를 모두 더한 수치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32만5천명가량으로 파악된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규모는 모두 60만명 수준으로 파악되며, 이 가운데 전사자는 10만∼14만명으로 추정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일 "우크라이나 공식 집계상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은 직업 군인과 징집병을 합쳐 5만5천명"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실종' 상태인 인원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CSIS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전쟁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상자를 낸 강대국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구소련의 나치 독일 항전 기간인 1천418일을 넘어섰다. 러시아의 군사력 우위에도 서방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끈질기게 반격한 결과다.
혹한기 민간인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포함한 후방 도심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민간인 피해도 커졌다.
지난 달 초 거세진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만 아파트 6천동에 난방 공급이 차단됐다. 당국은 시설 복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거듭된 공격으로 정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근 러시아의 후방 공격은 되려 수위를 높이는 양상이다.
지난달 28일에는 하르키우 인근을 지나던 여객열차가 러시아 드론 공격을 받아 4명이 숨졌다. 이달 1일에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에서 러시아 드론이 에너지 기업의 통근 버스를 직격해 15명이 숨졌고 자포리자주에서는 산부인과 병원이 두차례 공격을 받았다.
유엔 우크라이나 인권감시단(HRMMU)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 1만5천명이 사망했다. 특히 작년에만 2천5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해 최악의 한해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선은 사실상 교착상태다.
CSIS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년 1월 이후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5%만 추가로 점령했다.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EU 안에서 종전 논의는 단기 과제가 아닌 중장기이고 구조적인 안보 이슈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유럽개혁센터는 최근 '전쟁의 시대에 놓인 유럽 안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주권을 제약하는 러시아의 인식은 푸틴 시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유럽은 미국 없이 러시아에 맞서 안보를 구축해야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20년 안보 보장'을 공개 요구한 것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안은 "미국과 유럽이 심각한 균열을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이 안전보장에 소극적이라는 인식 등이 우크라이나에 상처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작년 1월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처리 방향도 향후 종전 협상 과정에서 뇌관이 될 수도 있다.
북한 측이 러시아를 통해 포로 교환을 요구하고 유엔과 한국 등 국제 사회가 강제 송환에 반대하며 맞설 경우 주요 쟁점으로 부각할 수 있다.
북한군 포로들은 한국 탈북민 단체에 전달한 친필 편지 등을 통해 한국 귀순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국 외교부도 이들이 한국행을 요청할 경우 전원 수용한다는 기본원칙을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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