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붐에 채권시장도 '버블' 우려
가산금리 수십년만의 최저 수준
빅테크 '100년 만기 채권'도 등장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투자 자금을 조달하고자 경쟁적으로 회사채를 내놓으면서 글로벌 채권 시장에 버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회사채 시장의 호황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가산 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이같은 우려를 전했다.
회사채는 통상 국채보다 위험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가산 금리를 보상으로 요구한다. 이 가산 금리가 너무 낮다는 것은 투자자들 사이에 '설마 망하겠느냐'는 과도한 낙관론이 퍼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FT에 따르면 회사채 시장은 작년 초부터 2기 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親)기업적 정책과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상승세가 시작됐고, AI 투자를 위한 채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열기가 고조됐다.
올해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글로벌 회사채 지수에서 A등급 회사채와 AA 등급 회사채 간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1997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0.2%포인트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BBB 등급과 A 등급 채권 간 스프레드도 0.3%포인트대로 축소되며 금융위기 전 때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스프레드 축소는 투자자들이 위험에 대비한 보상에 덜 민감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환경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행보도 더 대담해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기준 AA+인 구글은 이례적으로 최근 100년 만기의 '센추리본드'를 영국에서 발행해 주목받았다.
이런 초장기 채권은 그동안 주로 국채로 발행돼왔고, 빅테크 업계에서는 회사채 만기가 길어도 최대 40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S&P 신용등급이 BBB인 오라클도 AI 투자 지출에 따른 채무 증가로 신용등급 하향 압박을 받고 있지만, 지난주 250억달러(약 36조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해 시장의 수요를 재확인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열기가 비정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스프레드가 너무 낮아진 탓에 작은 악재에도 가산 금리가 오르고 회사채 몸값이 떨어지는 조정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기관 투자자인 피닉스 그룹의 누완 구네틸레케 자본시장 부문 대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늦여름부터 회사채 시장에서 버블과 유사한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며 "최근 보유 중이던 회사채 물량 일부를 매각하고 영국 국채 등 다른 채권 자산의 비중을 올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FT에 "오라클 사례도 이처럼 낮아진 스프레드를 절묘하게 이용한 것으로 본다. 지금처럼 회사채면 따지지 않고 매수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라클의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자산운용사 M&G인베스트먼트의 벤 로드 펀드 매니저는 채권 수익률만 보고 '사자'를 반복하는 행태가 유행하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투자자가 실제 감수하는 위험에 대해 보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FT는 투자자들이 매수 회사채의 '옥석' 여부를 세세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변동성이 커지면 채권별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미리 포트폴리오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CMBC에 따르면 유럽계 금융사 UBS는 지난 달 말 보고서에서 테크 및 AI 관련 회사채의 글로벌 발행 규모가 작년 7천100억달러(약 1천24조원)에 달했고, 올해에는 이 수치가 9천900억달러(약 1천429조원)로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