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네이션스컵 눈길 끈 '동상 응원'…영웅 루뭄바가 실제 주인공
김동석 국립외교원 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한 달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뜨겁게 달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CON) 축구대회가 세네갈이 주최국 모로코를 1대0으로 이기고 우승하면서 막을 내렸다. 사디오 마네(세네갈), 무함메드 살라흐(이집트), 빅터 오시멘(나이지리아), 아슈라프 하키미(모로코)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기량을 뽐내며 아프리카 축구의 화려함과 역동성을 보여줬다. 관중석 응원 열기는 월드컵 경기 못지않게 뜨거웠다.
이번 대회 내내 한 관중의 응원이 화제가 됐다. 미셸 은쿠카 음볼라딩가(Michel Nkouka Mboladinga).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대표팀의 열혈 팬인 그는 자국 초대 총리이자 독립 영웅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 분장을 한 채 DR콩고가 치른 모든 경기 내내 오른팔을 치켜든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이는 DR콩고 수도 킨샤사에 있는 루뭄바 동상의 포즈를 재현한 것이다. 이 장면은 공중파 방송,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DR콩고 관중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관중들도 은쿠카의 '동상 응원'에 성원을 보냈다. 16강전에서 DR콩고가 알제리에 1-0으로 진 후 은쿠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프리카 축구연맹은 은쿠카에게 DR콩고의 패배 후에도 '대회 친선대사'로 남아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패배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말하면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은쿠카의 루뭄바 동상 응원은 2025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대회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이는 아프리카의 해방과 단결을 외치다 서구 식민지배 세력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루뭄바의 유산이 아프리카 대륙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DR콩고와 16강전에서 승리 후 알제리 공격수는 은쿠카의 응원을 조롱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가 팬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였다. 이에 해당 선수의 사과 후 알제리 축구협회 관계자가 직접 은쿠카를 만나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알제리와 8강전에서 골을 넣은 나이지리아 선수는 골 세레머니로 '동상 응원' 제스처를 취하며 루뭄바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은쿠카의 모국 DR콩고는 벨기에의 지배를 받았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자국의 75배에 달하는 DR콩고 영토를 자신의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며 잔혹한 착취와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콩고인들은 고무 채취를 위한 노동에 강제로 투입됐다. 벨기에 군인들은 하루 정해진 고무 채취량 쿼터를 채우지 못한 콩고인들의 손과 팔을 잘랐다.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 이들과 볼모로 잡혀있는 가족들을 고문·학살했다. 주민들은 가혹한 노동으로 인한 질병·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레오폴드 2세의 악랄한 착취로 인해 약 1천만명의 콩고인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대 초 DR콩고 영토가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사유지에서 벨기에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전환된 후 끔찍한 잔혹 행위는 줄었다. 하지만 콩고인들에 대한 소외 및 차별, 자원 착취 등은 지속됐다.
1925년에 태어난 루뭄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대륙을 휩쓴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서 콩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1958년 콩고민족운동(MNC·Mouvement National Congolais) 창설 지도자로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으며, 가나 초대 총리 콰메 은크루마와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해방과 통합을 주창했다.
1960년 6월 독립 직전 치러진 선거에서 MNC가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루뭄바는 독립 콩고의 초대 수상이 됐다. 콩고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 연설은 그의 민족주의, 반식민 저항 정신을 보여줬다. 보두앵 벨기에 국왕은 레오폴드 2세를 찬양하고 벨기에 식민 지배가 콩고의 근대화에 기여한 바라면서, 곧 벨기에가 구축한 시스템 유지를 주문했다. 루뭄바는 이를 반박하며 잔혹한 인권 유린과 착취로 얼룩진 벨기에 식민 지배, 콩고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독립 투쟁, 독립국으로서 벨기에와 평등한 관계 설정 등을 강조했다. 루뭄바의 연설은 콩고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반면 보두앵 국왕의 일그러진 표정은 루뭄바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했다.
독립 직후 DR콩고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독립 이후에도 남아있던 벨기에 지휘관들에 반감을 품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벨기에는 루뭄바 정부를 흔들기 위해 자원이 풍부한 카탕가주 분리독립 운동을 지원했다.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옛소련에 도움을 요청한 루뭄바는 미국의 반감을 샀다. 1960년 9월 루뭄바는 미국, 벨기에의 사주를 받은 모부투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키상가니로 피신해 정권 회복을 노렸으나, 모부투 정부에 체포됐다.
루뭄바는 1961년 1월 카탕가주로 이송됐고, 모욕과 고문을 당한 후 벨기에 지휘를 받는 카탕가 군인들에 의해 총살됐다. 루뭄바의 시신은 절단돼 황산에 집어넣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해 처리를 감독한 벨기에 경찰 국장이 전리품으로 가져간 치아 하나가 루뭄바의 유일한 유해로 남아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모부투는 미국, 프랑스, 벨기에의 지원을 받으며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패와 인권 유린을 일삼으며 32년간 집권했다. 모부투의 통치는 독립 당시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축복받은 땅이라 불렸던 DR콩고를 가난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루뭄바는 프란츠 파농, 줄리어스 니에레레, 콰메 은크루마, 넬슨 만델라 등과 더불어 반식민주의, 범아프리카주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에티오피아, 남아공, 나이지리아, 앙골라, 모로코, 알제리 등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에 루뭄바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겼다. 파트리스 루뭄바 이름을 딴 대학교가 모스크바에 세워졌고, 많은 제3세계 출신 학생들이 이곳에서 교육받았다.
모부투 정권 붕괴 후 DR콩고 정부는 루뭄바를 국가 영웅으로 추대했다. 수도 킨샤사에 루뭄바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졌고, 2022년 루뭄바의 유일한 유해인 치아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루뭄바의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범아프리카주의 메시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구현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서구 의존에서 벗어나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의 손으로 해결한다'라는 모토를 실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U)은 분쟁국에 자체적으로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분쟁 당사자 간 중재에 나서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출범시켜 역내 공동 번영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아프리카는 유엔, 주요 20개국(G20), 브릭스 등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 증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은쿠카의 동상 응원과 이에 대한 엄청난 호응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즉 아프리카의 영웅 루뭄바를 불러낸 응원 퍼포먼스는 아프리카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네이션스컵을 국가 간 축구 경기를 뛰어넘어 아프리카인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뜻깊은 이벤트로 승화시켰다. DR콩고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할 경우 2026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전 세계인들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은쿠카의 동상 응원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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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교수
현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 부교수, 미국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 정치학 박사, 아프리카 분쟁과 평화,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외교 등 주제로 다수의 보고서 및 논문 작성, KBS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특별생방송 출연 및 자문, 영화 '모가디슈'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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