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국민이 원하는 차기 한은 총재의 자세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된 이후 주가와 금·은·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는 쇼크가 발생했다. 이는 워시 후보자의 과거 매파적 행보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지만, 매파였으면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에 부응하려는 그의 혼란스러운 정체에 대해 금융시장이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금리 결정을 포함한 통화정책은 나라 경제의 모든 부문, 아니 환율을 통해 나라 밖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중앙은행 총재는 그 통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다. 더구나 미국 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글로벌 금융시장과 세계 경기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이번 워시 지명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화들짝 놀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떤 인물이 임명되는지를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 연준 의장만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에겐 한은 총재가 더 중요하다. 한은 총재를 포함한 7인의 금통위원들이 결정하는 금리 등 통화정책은 가계대출에 적용되는 금리부터 원/달러 환율, 주식·채권·가상화폐, 심지어 부동산 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격변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은 또 내수와 수출을 좌우하고 가계와 기업, 정부 같은 각 경제주체의 판단과 지출 활동에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경기가 과열될 땐 브레이크를 밟고, 반대로 경기가 식을 땐 군불을 때야 하는 게 한은과 총재의 임무다.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은 총재의 임기가 4월에 만료된다. 이번 '워시 쇼크'를 보며 남의 일처럼만 생각할 수 없었던 건 우리도 한은 총재의 교체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역대 한은 총재는 외부의 인물이 임명된 적도 있고 한은 내부출신 인사가 선임된 적도 있다. 어느 경우건 각 장단점이 있다. 내부 인물이 수장이 되면 조직 관리와 업무 적응이 빠르고 전문성도 인정받지만 조직 내부논리에 빠져 혁신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외부에서 온 인물은 과감하게 개혁 조치를 밀어붙여 타성에 젖은 조직을 일깨우는데 효과적이지만,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배가 산으로 가거나 내부 조직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창용 총재는 탁월한 학문적 식견과 해외 근무 경험에서 비롯된 네트워크 등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 막판에 임명됐고 윤석열 정부 동안 임기를 수행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은 물론 경제와 금융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4년간 한은을 이끌어왔고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내왔다.
하지만 이 총재가 임기 동안 금융시장 및 국민과 소통하며 보여준 모습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한은 조직보다 개인플레이에 치중하면서 역량을 과시하고 국민과 시장을 가르치려 하거나 시장 불안의 책임을 서학개미에게 돌리는 태도로 논란과 분노를 유발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로는 '국민이 신뢰하는 한국은행'을 만들기 어렵다. 과거 금융시장과의 소통 문제에 대해 "시장이 내 말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고 시종일관 남 탓을 했던 모 총재는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해 기대인플레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우리 국민은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당당히 맞서면서도 변명과 '네 탓'보다는 겸허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국가 경제를 위한 길을 찾아나가는 한은 총재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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