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北에서 한국드라마 시청 적발돼도 뇌물이면 처벌회피"
탈북주민 25명 심층 인터뷰…"부패 만연해 돈·연줄 없으면 가장 큰 피해"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북한 주민들이 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단속될 경우 뇌물을 써서 처벌을 피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다 적발될 경우 장기간 노동교화형은 물론, 유포 규모가 클 경우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처벌 수위는 개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증언이다.
2019년에 탈북한 김준식(가명)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세 차례나 적발됐지만 가족의 연줄 덕분에 처벌을 피했다면서 "집에 돈이 있으면 경고로 끝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5천~1만 달러(약 720만~1천450만 원)의 뇌물을 써서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5천~1만 달러는 대부분의 북한 가정에서 수년 치 소득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9년에 탈북한 최수빈(가명)씨는 앰네스티에 "처벌은 전적으로 돈에 달려있다"며 "돈이 없는 사람들은 교화시설에서 나오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까지 판다"고 증언했다.
반면 돈과 연줄이 없는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단속될 경우 수년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영상물을 단속 목적으로 영장 없이 주민의 가택을 수색하는 국가보위성 산하 조직 '109상무' 요원들이 주민들에게 직접 뇌물을 요구한다는 증언도 적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시한 집중 단속 기간에는 뇌물을 주거나 연줄이 있어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전언이다.
이와 함께 북한 당국은 공개 처형을 주민 전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사상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공개 처형 장소에 데려가고, 학생들은 강제로 처형 장면을 지켜봐야 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2019년에 탈북한 김은주(가명)씨는 "중학교 때부터 공개처형을 봤다"며 "한국 미디어를 보거나 유포하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이번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2019~2020년에 북한에서 탈출한 2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앰네스티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해 주민의 정보 접근을 범죄화하는 모든 법을 즉각 폐지하고,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공개 처형을 보여주는 행위도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라 브룩스 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담당 부국장은 북한 주민들이 뇌물을 써서 처벌을 피하는 현상에 대해 "억압 위에 부패가 덧씌워진 구조"라며 "가장 큰 피해자는 돈과 연줄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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