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기업 파나마항 운영권 취소로 中 중남미전략 시험대 올라
전문가 "중남미서 '돈로주의' 도전 직면한 中에 전략적 시험 사례"
법조계 "기업 차원 조치 제한적…국제중재 밟으려면 中정부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파나마 대법원이 홍콩기업 CK허치홀딩스의 파나마 운하 항만 운영권을 무효화하면서 중국의 중남미 전략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해당 항구를 해외 주요 전략자산으로 보는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홍콩 재벌 리카싱 가문 소유인 CK허치슨홀딩스(이하 CK허치슨)가 1997년부터 운영해온 파나마 운하의 크리스토발·발보아 항만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간 중남미 지정학적 경쟁의 주요 충돌지점이 돼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미국의 '승리'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파나마 운하가 중국 영향력에 놓였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1999년 파나마에 넘긴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중국은 지난해 CK허치슨이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이탈리아 재벌 아폰테 가문의 MSC 컨소시엄에 파나마항 운영권을 매각하려는 시도를 막으려 반독점 조사를 개시하고, 국유 해운사를 컨소시엄에 참여시키려 하는 등 압박을 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파나마 대법원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파나마 당국과 CK허치슨의 항만 운영권 계약 자체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중국은 중남미 지역 거점 항구로 여기던 파나마 항만을 그대로 내주게 될 상황에 놓였다.
더구나 이번 판결은 지난해 2월 파나마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탈퇴를 선언하고, 지난달 초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로 중국기업이 투자한 현지 석유사업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나왔다.
중국은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 지역에 지난 20여년간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으며 영향력을 키워왔는데 그동안 쌓아온 입지에 연달아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판결이 "서반구에서 중국에 가해지는 압박을 가중하며, 다른 국가 정부들에도 트럼프 재임 기간 중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돈로주의'(트럼프식 먼로주의) 행보로 중국의 중남미 전략이 시험대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미국은 파나마 항만에 대한 감독을 점차 강화할 것이라며 "중국은 트럼프의 '신 먼로주의' 아래 미국이 중남미 항구·석유·광물 등 핵심자원을 통제하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말했다.
중국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달 30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단호하게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 정부도 해당 판결을 규탄하면서 홍콩 기업의 파나마에 대한 투자를 "신중하게 검토"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 담당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이번 일을 전략적 시험사례로 보고 자국과 연계된 이익이 표적이 될 경우 이를 방어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줄 강한 동기가 있다"며 "이제 문제는 CK허치슨 차원이 아니라 '도미노를 멈추는 것'에 가까워졌다"고 WSJ에 말했다.
한편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CK허치슨 차원의 대응조치가 제한적이며, 국제사법재판소(ICJ)나 국제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려면 중국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로펌 하우젠 LLP의 바실 황 매니징파트너는 파나마 최고 법원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CK허치슨이 파나마에서 상소가 가능할지 불명확하며, 다른 외국 법원에 소송을 내려 해도 파나마가 '주권면제'(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를 주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CJ는 국가 간 소송만 가능하므로 중국이 나서서 파나마를 제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하이의 뷰티밸리 로펌의 샹팡량 파트너는 CK허치슨이 ICSID를 통해 국제중재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여기에는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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