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할 때 아냐" 고삐 죈 이재용…반도체 반등 속 '초격차' 재점검
실적·주가 반등에도 긴장 주문…대외 불확실성에 낙관 경계
'초격차'로 삼성 위상 회복 의지…기술 경쟁력 재정비 속도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강태우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들에게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며 경쟁력 회복을 주문한 것은 약화한 반도체 초격차와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 회복과 주가 상승으로 '삼성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중국 기업들의 추격 등을 감안하면 기업 환경이 절대 녹록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천여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통해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교육에서 공개된 이 회장의 메시지에는 2007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이 소환돼 "우리나라는 지금도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달라진 건 경쟁 구도가 바뀌었고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생존의 문제', '사즉생' 메시지에 이어 여전히 조직 내부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특히 교육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크리스털 패에 새겨진 '위기를 넘어 재도약으로' 문구는 위기 인식을 전제로 실행과 성과를 통해 삼성의 저력을 다시 보여주자는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한동안 실적을 떠받치던 반도체 사업이 부진하면서 고초를 겪어왔다.
반도체 불황이 본격화된 2023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14조8천800억원의 적자를 낸 뒤 2024년에 흑자 전환(영업이익 15조1천억원)에 성공했지만 'HBM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23조4천673억원)에 연간 영업이익 1위 자리를 내줬다.
D램 시장 점유율에서도 지난해 1분기에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선두 자리를 빼앗기는 등 33년 만에 메모리 주도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는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고부가 제품인 HBM이 급부상한 가운데, HBM 투자에 실기한 삼성전자가 HBM 납품 지연 등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역시 적자 폭을 줄여가고 있지만, 업계 1위 대만 TSMC와 격차는 확대되고 중국 업체와 격차는 좁혀지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작년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전 분기 대비 0.8%포인트 상승한 71.0%를 기록했다. 반면 2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7.3%에서 6.8%로 줄었고, 중국 SMIC는 5.1%로 삼성전자를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는 분위기가 반전됐다.
압도적인 캐파(생산능력)를 갖춘 삼성전자가 범용 D램 가격 상승 추세에 올라탄 데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 공급을 확대한 것이 맞물리면서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4분기에는 삼성전자의 D램 1위 자리 탈환도 유력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20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국내 기업 최초로 '단일 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시대를 열었고, 연간 매출도 332조7천7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주가도 나날이 치솟고 있다.
이 회장의 '취임 3주년'이었던 작년 10월 27일 삼성전자 주가는 사상 처음으로 10만원을 돌파했으며, 이달 23일에는 종가 기준 15만2천1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초 주가(5만7천300원)와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이처럼 실적과 주가가 빠르게 회복됐음에도 이 회장이 임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언급한 것은 삼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초격차 경쟁력이 여전히 완전한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반도체를 중심으로 실적이 반등하고 있지만, 그룹 전반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가전 등 세트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공세, 부품 가격 상승 부담이 겹치며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TV와 생활가전 사업은 장기 침체 국면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하며 구조적 부담이 여전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임원들에게 단기 실적에 취하지 말고 경쟁력 회복을 강조한 것은, 반도체 시황 반등에 가려진 구조적 과제를 직시하라는 주문으로도 읽힌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시황 영향도 적지 않은 만큼, 숫자에 연연하기보다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자는 게 이 회장의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초격차 경쟁력 회복을 위한 실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사법 리스크를 덜어낸 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접점을 넓히는 등 대외 행보를 강화했다.
아울러 지난해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출범한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하고, 인수·합병(M&A)팀을 신설하는 등 조직 정비에 나섰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테일러 공장과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한편, 최근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으로부터 HBM4 SiP(시스템 인 패키지) 테스트 최고점을 받으며 차세대 제품 HBM4(6세대) 공급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DS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HBM4가 고객들에게 '삼성이 돌아왔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차별화된 성능 경쟁력을 보여줬다"며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반드시 되찾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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