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관세' 본격화…韓정부·업계 긴장 속 대응책 모색
한미 관세협상서 반도체에 '최혜국대우' 약속 상기…"전략적 대응"
'기준점' 대만, 미국에 반도체 공장 5개 추가 증설키로…韓기업엔 '부담'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한지은 기자 = 미국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반도체 관세' 도입 움직임을 본격화하면서 정부와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상호관세 등 무역 협상을 통해 한국은 반도체 관세에서 '최혜국 대우'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가변적일 수 있어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반도체 관세는 국가별 추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대미 반도체 투자를 압박하며 '반도체 관세 100%'를 언급하기도 해 미국 측 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美, 일부 반도체 칩에 1단계 '25% 관세'…2단계 예고에 업계 '긴장'
18일 청와대는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 범위가 확대되는 기류와 관련해 "(한미가 합의한)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곧 산업통상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보고받고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반도체 포고문'에 서명하자, 김정관 장관 주재로 즉시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따로 업계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업계 의견을 청취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초 취임 직후 주요 무역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고 이를 구실로 관세 협상을 벌여 대미 투자를 약속받았으나 반도체에 대한 관세는 작년 8월 부과 방침을 밝힌 뒤 최근까지도 전면적으로 부과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14일 서명한 반도체 포고문 내용은 미국으로 수입된 특정 반도체나 파생 제품이 미국의 기술 공급망 구축이나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하지 않을 경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대만에서 생산 후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엔비디아의 AI 칩 'H200'이나 AMD의 'MI325X'가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으로 지목됐다.
정부와 업계는 일단 이번 조치가 일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성격이 큰 만큼, 국내 업계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방미 귀국 일정을 미루고 현지에서 반도체 관세 상황을 파악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날 귀국길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이) 발표한 1단계 조치는 엔비디아와 AMD의 첨단 칩, 그 두 종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우리 기업들이 주로 수출하는 메모리칩은 제외돼 있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여 본부장은 "2단계 조치가 언제, 어떤 형태로 확대돼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경계했다.
실제로 미국 백악관은 팩트시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 및 그 파생 제품 수입에 대해 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고 '2단계 조치'를 예고했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가 2단계 조치로 부과할 관세 및 기업의 대미 투자와 연계한 관세 상쇄 프로그램 등에 대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우려하고 있다.
◇ 한미 협상서 '반도체는 최혜국대우'…기준점인 '대만'은 추가 대미 투자
일단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 타결한 한미 관세·무역 협상에서 반도체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한국에 적용하려 한다는 점을 백악관·청와대 '조인트 팩트 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명시한 만큼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기 위해 이를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부각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반도체의 교역 규모가 한국 이상인 국가'를 비교 대상으로 들었는데, 사실상 주요 경쟁국인 대만을 기준점으로 삼은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만이 미국과 협상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미국과 대만은 '반도체 포고령' 서명 다음 날인 지난 15일 관세 협상을 타결짓고, 기존 20%이던 대만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대만 기업들과 정부가 미국에 각각 2천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신용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능력을 신설하는 대만 기업의 경우 해당 시설의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생산능력의 2.5배 수입분까지 관세를 면제하고,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을 완공한 대만 기업의 경우 신규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를 내지 않고 수입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6개를 완공했거나 증설할 예정인데, 이에 더해 반도체 공장 5개를 추가 증설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계도 '대만 케이스'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대만에 대규모 현지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 혜택을 부여한 만큼 향후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투자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현지 투자를 사실상 협상 카드로 쓰고 있고, 대만이 수천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도 압박받을 수 있다고 본다"며 "업계 모두 부담을 느끼고 있을 듯하다"고 전했다.
◇ 삼성·SK 등 대미투자 부담 늘어날까…정부 "韓 기업에 유리한 전략 마련"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향후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 투자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계획을 수정해 대미 투자 규모를 총 370억달러로 확대했다.
SK하이닉스 또한 인디애나주에 38억7천만달러를 투입해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내는 '추가 신호' 역시 부담스러운 내용이다.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16일 뉴욕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며 '100% 반도체 관세'를 언급해 업계를 다시 긴장시켰다.
러트닉 장관이 특정 기업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한국과 대만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두 나라에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듭 시사한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투자를 둘러싼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AI 반도체 산업이 호황인 상황에서 현지 투자를 통해 미국 빅테크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도 기회"라며 "미국에 추가적인 투자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그 수익을 한국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궁극적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은 국내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미국과 협상을 지속하되 국내 반도체 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전략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미국의 반도체 관세나 대만에 대한 반도체 관세 모두 현재로선 확정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닌 만큼 동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며 업계와 함께 대응할 방침"이라며 "이미 미국과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의 반도체 관세를 약속받은 만큼 이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에 가장 유리한 협상 전략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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