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배터리 르네상스…'포스트 IRA'시대 돌파구는 'R·E·D'

입력 2026-01-01 06:31
저무는 '배터리 르네상스…'포스트 IRA'시대 돌파구는 'R·E·D'

위기의 K-배터리, 자산개편·ESS·디커플링 키워드로 대책 마련 분주

LG엔솔, 조단위 계약 해지·SKC 양극재 사업 철수 등 전기차 캐즘 여파 '도미노'

IRA의 '투자=성공' 법칙 소멸…"전략 재정립 여부가 경쟁력 가를 것"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붉은 말의 해인 2026년은 국내 배터리 업계의 생존을 가를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촉발한 '배터리 르네상스'가 저물고 '포스트 IRA' 시대에 접어들며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짙다.



◇ 전기차 캐즘 장기화에 사업 철수·자산 개편 본격화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수요 둔화, 고금리, 규제 강화 등 급변하는 '포스트 IRA'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공식처럼 여겨지던 북미 시장의 '투자=성공' 법칙이 무색해지면서 새로운 생존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주요 키워드로는 ▲자산 개편(Restructuring)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망 디커플링(Decoupling)이 꼽힌다.

배터리 업계의 자산 개편은 지난해 연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9월 30일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면서 미국 시장의 전기차 전환 속도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완성차 업체들과 구축했던 합작회사(JV)를 단독으로 전환하고 사업에서 철수하는 등 설비투자(Capex)와 리스크 최소화에 나섰다.

업계 '맏형'급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4일 혼다와 설립한 JV 'L-H 배터리 컴퍼니'의 건물 및 건물 관련 장치 자산 일체를 혼다 미국 개발·생산 법인에 처분하기로 했다. 매각 대금은 4조2천212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서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만든 세 번째 합작공장인 '얼티엄셀즈 3기(LLC3)'를 인수해 단독 공장으로 전환했다.

SK온도 지난달 11일 포드와의 미국 합작법인 체제를 종결하고 블루오벌SK를 각자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SK온은 테네시 공장을, 포드는 켄터키 1·2공장을 각각 독립적으로 소유·운영한다.

배터리 소재 업계도 급변한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SKC는 지난달 31일 공시를 통해 양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투자자 설명회에서 배터리 소재를 핵심 성장 축으로 삼고 동박 사업 확대와 함께 차세대 음극재·양극재 사업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장기화하면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이 같은 자산 개편 흐름에는 최근 연쇄적으로 발생한 수주 잔고 감소도 영향을 끼쳤다. 북미 업체들과의 조단위 계약이 연이어 해지되면서 설비 투자 부담을 줄이고 생산 라인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에만 총 14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해지했다. 미국 포드와 약 9조6천억원, 미국 FBPS(Freudenberg Battery Power Systems)와 3조9천217억원 규모다.

계약 관계가 얽혀있는 합작 공장은 시장 수요 둔화 등에 대응해 신속한 생산조정이 어렵다. 반면 단독 공장은 투자 효율과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특정 고객향의 전기차 배터리만 생산할 필요 없이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해 가동률을 높이고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

재무 개선 효과도 있다. 앞서 SK온과 포드 JV 종결에 대해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실적에서 자산 10조원 및 부채 5조5천억원 감소가 예상된다"며 "중장기 전략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 IRA 유지되는 ESS로 위기 돌파…생산 라인 전환 추진

자산 개편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공략하고 있는 새로운 돌파구는 ESS다.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전기차 시장과 달리 ESS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ESS는 세액공제 혜택이 조기 종료된 전기차와 달리 IRA 원안이 그대로 유지돼 2032년까지 생산세액공제(PTC)가 적용된다. 다만, 2033년부터는 단계적(75%→50%→0%)인 감축이 시작된다. ESS 설치 프로젝트 관련 투자세액공제(ITC) 조항도 2035년 내 착공시 받을 수 있다.



또한 수천∼수만킬로와트시(㎾h)의 배터리가 필요할 정도로 전기차(1대당 60∼100kWh)보다 규모가 크고 공급 계약이 장기적이어서 안정적인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은 2024년 250억 달러에서 2032년 1천141억 달러(약 159조8천억원)로 연평균 19.6%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단독 공장 전환으로 확보한 생산 유연성을 ESS에 집중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으로부터 인수한 랜싱 LLC3 공장에서 ESS 생산 라인을 준비하고 있으며, SK온 역시 조지아주 단독 공장에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테네시 공장 일부 라인의 ESS 전환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당장 이달부터 중국산 ESS 제품에 대해 최대 48.4% 수준의 고율 관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유럽 시장은 유럽산 부품 사용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역내 생산을 강조하는 등 첨단산업에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에 국내 소재 업체들은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하며 반사 이익을 꾀하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은 최근 헝가리 데브레첸 양극재 공장 준공식을 열고 올해 가동을 앞두고 있다. 국내 양극재 회사 중 최초로 유럽 생산 거점화에 성공할 예정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가 기회의 시대를 열었다면 포스트 IRA는 전략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며 "이 전략을 빨리 재정립할수록 다음 10년의 배터리 산업을 주도할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jak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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