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이재명 정부 중동·아프리카 순방…'글로벌 사우스' 새 외교 축
조준화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지난 11월 이재명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튀르키예를 순방하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외교 행보를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다자외교 참석을 넘어, 글로벌 사우스와 실질적 연대를 시도하고, 외교 다변화를 향한 실질적 행보의 출발점으로써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 체제 이후 미국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다자주의가 흔들리는 국제질서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남아공에서 열린 G20에 끝까지 참여하며 다자 협력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동시에 중동과 아프리카 순방을 통해 양자외교 차원에서도 방산·에너지·인프라·보건·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과거 정부 말기에나 추진되던 마무리 성격의 외교가 아닌, 집권 초기부터 4강 외교와 더불어 글로벌 사우스를 외교의 주요 축으로 삼으려는 시도이자, 외교 지형을 바꾸려는 정책적 전환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남아공이 주최한 이번 G20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열린 G20 정상회의로 주목받았다. 정상선언문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점적으로 제기해 온 재난 대응, 부채 지속가능성, 에너지 전환 재원 확보, 핵심 광물의 공정한 가치사슬 구축 등과 같은 의제들이 대거 포함됐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정상선언문 채택 시점을 회의 시작으로 앞당겨 반대 여론을 우회하는 등 전략적인 외교 수완을 발휘한 것도 돋보였다. 물론 미국의 불참, 아르헨티나·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 등으로 주요 권고안들이 일부 제외됨에 따라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복잡한 외교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끌어낸 것 자체가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G20 정상선언문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숙원 과제들이 담겼다. 저소득 국가들의 부채 지속가능성 확보는 아프리카 21개국이 현재 부채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반영했다. 코로나19 당시 도입된 부채 구조조정 프레임워크(Common Framework)를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심 광물 자원을 보유한 대륙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공정하고 투명한 공급망을 통해 자원주권을 실현하고, 국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산업적·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정상선언문은 'G20 아프리카 파트너십'에 대한 강한 지지를 재확인했고, 2025∼2033년을 범위로 하는 'G20 아프리카 콤팩트 2단계'가 독일과 세계은행의 다자기금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는 기존의 원조중심 개발협력을 투자중심 모델로 전환하려는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동시에, 민간 주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 정부는 11월 21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총 1억달러(약 1천400억원) 기여를 공약했다. 글로벌펀드는 3대 감염병인 에이즈·결핵·말라리아 예방 및 퇴치를 목표로 2002년 출범한 세계 최대 국제 민관협력 기구다. 한국의 이번 공약은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행보로 평가된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이 자리에서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부채 문제 해결과 개발협력의 효과성 제고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또 아프리카 대상 식량원조 사업 및 K-라이스벨트 구상도 함께 소개하며 협력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집트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한 한-이집트 간 샤인(SHINE)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외교 구상을 넘어서 장기적이고 제도화된 협력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SHINE은 안정(Stability), 조화(Harmony), 혁신(Innovation), 네트워크(Network), 교육(Education)의 다섯 축을 기반으로 한 협력 모델이다. 중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 가능성을 품고 있다. 비전 2030을 추진 중인 이집트 정부는 관광·제조·산업구조 개혁 등을 통해 세계 30위권 경제로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핵심 발전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
이집트는 약 1억명의 내수시장과 저렴한 생산비용,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를 기반으로 한국 기업들의 거점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집트 현지에서 대규모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현대로템의 전동차 공급, 방산·원전 분야 수주 등으로 전방위적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 측면에서도 한국 드라마, K-팝, 웹툰, 한국어 교육 수요가 높아지는 등 이집트는 K-컬처 확산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UAE에서 제안된 가칭 'K-시티' 구상은 이러한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원전, AI, 방산, 보건 등에서 협력을 하나의 도시 프로젝트로 집약한 K-시티는 한-UAE 협력의 확장 플랫폼이자 중동 시장 공략의 허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부 간 고위급 TF 설치와 같은 구조적 추진체계는 단순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넘어 실질적 이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구상은 한국과 UAE 간 100년 동행이라는 비전을 현실화하는 상징이다. 또 제3국 공동 진출을 위한 전략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번 순방은 한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단순한 지원국을 넘어 주체적 행위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자임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한국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해 성공한 국가로서,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에 신뢰받는 협력 파트너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자산은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로부터 얻는 중요한 외교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적극적인 외교 행위는 그만큼 더 큰 책임도 수반한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글로벌 사우스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방적 지원을 넘어, 상호이익에 기반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국을 선택하는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중동·아프리카의 관심에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역시 해당 지역의 역사·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는 양방향적 교류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다극화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다. 이는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산이자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관건은 이러한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적 역량과 지속적인 정치적 의지를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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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준화 박사
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창립멤버), 신한대 겸임 교수, 영국 런던대(SOAS) 정치학 박사, 연세대·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 및 강사 역임. 주요 연구 분야는 아시아-아프리카의 국가 간 외교 관계, 아프리카 개발협력, 아프리카 선거, 분쟁, 이주 난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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