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MI5, 북아일랜드 분쟁서 이중스파이의 살인 묵인"
9년만에 수사결과 발표…"MI5 자료 늑장 제출"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영국 국내 정보기관 보안국(MI5)이 무장조직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서 활동하던 이중 스파이의 살인과 납치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9일(현지시간) 이 사안을 다룬 경찰의 '케노바 작전'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MI5는 1970∼1990년대 영국 군 첩보요원으로 활동한 '스테이크나이프'(Stakeknife)가 IRA 내 정보 조직에서 살인, 납치·감금 등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걸 인지하고 있었다고 AP·AFP 통신과 BBC 방송이 보도했다.
MI5는 앞서 스테이크나이프와 '주변적인' 관련만 있다고 주장했지만, 보고서는 MI5가 그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정기 브리핑을 받는 등 관리에 관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스테이크나이프는 IRA 내에서 정보원으로 의심되는 이를 색출해 고문, 살해하는 역할을 맡은 보안 조직을 이끌었다. 북아일랜드 검찰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스테이크나이프가 연루된 범죄는 살인 14건, 납치 15건으로 파악된다.
스테이크나이프가 첩보 활동을 통해 구한 사람이 그로 인해 살해된 사람보다 적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당국은 IRA 내 스테이크나이프의 신원 보호를 다른 사람들의 보호보다 우선시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스테이크나이프의 담당자들은 그가 살인 및 불법 감금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자 그를 두 차례에 걸쳐 역외로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요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점검과 균형 장치가 무시됐고, 이런 모호한 경계로 인해 스테이크나이프는 중대한 범죄들을 계속 저지르면서 일절 처벌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6년 시작된 '케노바 작전'은 스테이크나이프가 이끈 IRA 내부 보안 조직과 연계된 살해·납치 사건 101건을 들여다봤다. 수사에는 4천만 파운드(약 780억원)가 투입됐고 9년 만에야 결론이 나왔다.
보고서는 MI5가 자료를 뒤늦게 공개한 점도 비판했다. 보고서는 "수사를 방해하고 스테이크나이프 관련 기소를 피하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정보원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스테이크나이프로 사실상 널리 인정받아온 벨파스트 출신 프레디 스카파티치의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스카파티치는 2003년 이미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2023년 77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존 부처 북아일랜드 경찰청장은 이날 정부가 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언 매캘럼 현 MI5 국장은 "살해·고문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자료 공개가 늦어진 점도 사과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아일랜드 공화파와 영국 충성파, 영국 보안군이 충돌했던 북아일랜드 분쟁에서는 3천600명이 사망하고 5만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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