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신동훈 "극단적 대비의 음악, 조성진은 해내더라"
조성진·런던심포니 위한 피아노 협주곡 작곡…런던서 초연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어떤 부분은 너무 어려워서 이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1악장 카덴차(무반주 독주)는 거의 인간이 하는 게 가능할까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 해내더라고요."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를 위해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쓴 작곡가 신동훈은 20일(현지시간) 저녁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세계 초연을 앞두고 조성진과 함께한 작업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날 공연은 LSO가 한 음악가의 세계를 집중 탐구하는 '아티스트 포트레이트'(Artist Portrait) 프로그램의 하나다. LSO는 조성진을 이번 시즌 아티스트로 선정하고 그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신동훈 작곡가에게 맡겼다. 지휘는 현대음악에 두각을 보이는 프랑스 출신 막심 파스칼이 맡았다.
신동훈 작곡가는 로베르트 슈만을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의 보편적 양면성과 모순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극단적으로 대비를 이루는 음악 요소들이 강하게 충돌하고 산산이 부서지다가 하나로 수렴한다.
신 작곡가는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작곡가 중 한명인 슈만으로부터 시작해,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곡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전통적인 피아노 협주곡 형식을 따르면서도 각 구조를 비틀고 해체했다.
"이중성이라는 아이디어가 이 피아니스트에게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성진씨가 수줍어하고 말도 많지 않고 내향적이지만, 무대 위에 오르면 존재감과 '불'(fire)이 있죠. 그런 차이가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협주곡은 조용히 빗방울을 하나둘 떨구다가 일순간에 얼굴을 바꿔 벼락을 친다. 강한 대비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지속해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정적 측면에서도 극단적인 음악을 쓰고 싶었어요. 이렇게 좋은 솔로이스트(독주자),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데 그냥 정확하게 연주하기만 하면 되는 곡을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어요."
신 작곡가는 조성진과 LSO를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일컬으면서, 표현해야 할 범위를 극과 극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LSO는 아주 유연하고 카멜레온 같은 오케스트라입니다. 가벼울 때는 아주 가벼워질 수 있고 무거운 표현이 필요할 땐 아주 무겁게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이런 대비가 많은 음악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협주곡 작업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직접 대화하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신 작곡가는 작곡 중간에 조성진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에 따라 일부는 손보기도 하는 협업 같은 과정이었다면서 "아주 좋은 컬래버레이션이었다"고 말했다.
조성진 역시 앞서 LSO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신동훈과의 대화에서 "쇼팽(프레데리크 쇼팽)이나 프로코피예프(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는 그럴 수 없지만, (신) 작곡가와 상의할 수 있고 작곡가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어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11살 차이인 신 작곡가와 조성진은 이번 작업으로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같은 도시(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친구처럼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조성진은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인 감각의 균형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동훈 작곡가는 서울대, 런던 길드홀음악연극학교, 킹스칼리지런던에서 강석희, 진은숙, 줄리언 앤더슨, 조지 벤저민을 사사했다. 2016년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작곡상, 2019년 젊은 인재를 위한 영국비평가상, 2022년 베를린필하모닉 카라얀아카데미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받았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며 한국인 작곡가라는 점을 특히 의식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조성진, 김선욱 등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즐겁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클래식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반겼다.
"좋은 연주자도 많고, 작곡가가 제일 늦게 나온다고 하는데 진은숙 선생님, 김택수 작곡가도 계시죠. 유럽 오케스트라들이 한국 투어를 다녀와서 관객층이 젊다고 놀라워 합니다. 스타 연주자들이 많고 팬덤도 생기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제12회 K-뮤직 페스티벌의 하나로 이날 무대를 지원한 주영한국문화원의 선승혜 원장은 "한국의 연주자 조성진과 한국 작곡가 신동훈이 서로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고 런던에서 초연했다는 건 한국 음악에 새로운 이정표"라고 말했다.
cheror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