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⑺: 바오바브 나무 사이의 고속도로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 '어린 왕자'에는 바오바브(바오밥) 나무가 나온다. 작품 속에서 바오바브 나무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을 위협하고 파괴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당시 바오바브 나무의 독특하고 신기한 생김새 때문에 바오바브 나무가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릴 적 예상과 달리 바오바브 나무는 실제로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나무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에는 다양한 종류의 바오바브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의 현지 연구를 마친 뒤 마다가스카르의 명소인 바오바브 나무 거리(Avenue of the Baobabs)를 찾아가고자 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안타나나리보에서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이동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항공편은 비용이 상당히 높았을 뿐 아니라 일정도 맞지 않았기에 그리고 현지의 모습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필자는 안타나나리보에서 육로로 바오바브 나무 거리로 가기로 결정했다.
새벽 6시에 시작된 여정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다가스카르에서 도시 간을 육로로 이동한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온 필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마다가스카르에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없었다. 그 여정 속에서 필자가 몸소 깨달은 것은 필자가 '2차선의 저주'라고 부르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이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왕복 2차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그저 낯설고 흥미로운 풍경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내 그 길 위에서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교통량이 분산되는 4차선과 달리 2차선 도로는 추월이 어렵고 이동 경로도 제한된다. 그래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차량 행렬이 멈춰 서고, 꼼짝없이 느린 속도로 기어가게 된다. 사고라도 난다면 그날은 종일 도로 위에 발이 묶인다.
통상 1시간이면 충분할 여정이 2시간, 때로는 4∼5시간으로 늘어난다. '2차선의 저주'라 부를 만한 현상이다. 도로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착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고, 일정은 늘 불확실하다. 이런 환경에서 경제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물류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기업이 공장을 짓고, 해외 자본이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불가능하다. 이동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 물류와 사람이 원활히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왕복 4차선의 도로가 필요하다. 여기에 톨게이트가 있는 고속도로망이 구축돼야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시작될 수 있다.
한 국가가 경제 개발을 하기 위해서 도로를 포함한 철도·공항·항만 등 기본적인 사회기반 시설은 필수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기반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를 기준으로 길이 100㎞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대략 6천억원에서 1조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기존의 사회기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국가에서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당장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기반 시설에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기가 어렵다. 먼저 정부의 의지가 필요할 뿐 아니라 공여국을 포함해 세계은행, 지역 개발은행 등의 도움이 절실하다.
바오바브나무 나무 거리를 지나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곳곳에 넘쳐난 강물 때문에 도로가 아예 끊겨 있었다. 다리가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건설돼 있지 않았기에 차량을 배에 실어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운용되는 배편 부족 문제로 일정 수의 차량이 모여야만 운송이 시작됐다. 일찍 도착한 필자는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들은 신기한 체험을 한다고 좋아하긴 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관광 산업을 제외하고 이 지역에 어떤 산업이 가능할까. 화물차는 이곳에서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까. 다리는 건설될 수 있을까. 지역 주민들은 다리 건설을 정녕 원하는 걸까. 다리가 건설되면 배를 운항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회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개발협력사업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그만큼 수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사업의 첫걸음인 지역 선정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 먼저 도로나 다리를 건설해야 하는지를 두고, 엘리트 그룹과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때로는 정부가 정치적 판단을 근거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규모 사업이 부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입되는 예산이 방대하기 때문에 소규모 개발사업보다 부정과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훨씬 크다. 특정 이익집단이 개입하거나 입찰 과정의 불투명성이 문제로 떠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사회기반 시설 건설과 관련된 개발협력사업이 진정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책무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년에 마다가스카르에는 최초의 고속도로인 안타나나리보-토아마시나(Antananarivo-Toamasina)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됐다. 2025년 8월에는 일부 구간이 개통됐다. 고속도로 건설은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아름다운 마다가스카르의 환경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개발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여러 문제를 겪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의 자금 유용과 뇌물 수수도 문제가 됐다. 최근에는 청년 세대의 반정부 시위로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이 해외로 망명하고 군부가 정권을 잡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다가스카르에 처음으로 건설되는 고속도로는 앞으로 마다가스카르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안타나나리보에서 바오바브나무 나무 거리가 있는 모론다바를 잇는 고속도로 공사는 시작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마다가스카르의 많은 도시가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날이 오면, 어린 왕자의 별에만 있는 줄 알았던 바오바브 나무 사이를 시원한 고속도로를 통해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