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10·15대책 규제지역 지정 논란…"적법이냐 위법이냐"
野 "9월 빼고 6∼8월 통계 사용은 위법…중랑구 등 8곳 제외했어야"
행정소송에 법적 다툼으로…정부 "공표 전 통계 쓰면 통계법 위반" 반박
화성·광주·군포는 지정요건 갖춰도 제외돼…전문가 "낡은 기준 손질해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10·15대책의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지정을 둘러싼 적법성 논란이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국토교통부가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시·구까지 규제지역을 광범위하게 지정하는 과정에서 최신 통계를 무시하고 규제지역 지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까지 무리하게 지정한 것이 위법이라는 게 논란의 골자다.
야당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정치 쟁점화하는 모양새여서 과거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이 또다시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직전 3개월 통계 시점 논란…"7∼9월 통계 써야" vs "6∼8월 통계가 최신"
규제지역 지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지정의 근거로 활용한 '직전 3개월 통계'의 적용 시점이다.
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의 최우선 지정 요건은 '직전 3개월 주택 가격 상승률이 해당 시·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3배를 초과한 경우'여야 한다.
여기에 청약경쟁률(5대 1 초과), 분양권 전매 거래량(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 주택보급률 또는 자가주택 비율(전국 평균 이하인 경우) 등 3가지 선택요건 중 1개 이상을 충족해야 정량적 요건을 갖추게 된다.
투기과열지구는 정량기준을 '해당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은 지역'으로만 정하고 있는데, 국토부는 통상 '물가 상승률의 1.5배'를 지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이 지난달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의 기준을 따르면 10·15대책의 직전 3개월은 7∼9월인데 정부는 6∼8월 통계로 규제지역을 묶었다"고 지적하면서다.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사전에 9월 집값 통계를 받아놓고도 의도적으로 6∼8월 통계를 써서 집값이 덜 오른 곳까지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천 의원은 "7∼9월 통계를 쓰면 중랑·강북·도봉·금천구 등 서울 4개 구와 성남 중원구, 의왕시, 수원 장안·팔달구 등 경기 4개 시·구 등 총 8개 지역이 정량 기준이 미달하는데 8월까지의 통계를 사용하는 위법한 처분으로 하루아침에 대출 제한, 세금 중과 등 막대한 재산권의 제한을 받게 됐다"면서 "처분일 기준 9월 통계가 존재했음에도 이를 배제한 것은 명백한 주택법령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반박한다.
부동산원으로부터 9월 통계 결과는 대책 발표 전인 10월13일 오후 2시에 받았지만, 공표 전 자료를 활용하면 통계법 위반 소지가 있어 규제지역 지정을 위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9월 통계를 적용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9월 통계의 공식적인 공표 시점은 10·15대책 발표 직후인 15일 오후 2시, 주정심 의원들의 서면 심의는 9월 통계 공표 전인 13∼14일에 진행됐다.
국토부는 "관련 법에 해당 기간에 대한 통계가 없는 경우 가장 가까운 월 또는 연도에 대한 통계를 활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10·15대책은 추석 전부터 준비가 이뤄졌고, 주정심은 9월 통계 공표 전에 잡혀 있어 처음부터 9월 통계는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 9월 물가상승률 급등, '8곳+α' 논란…국토부, 화성·광주·군포는 기준 충족해도 빠져
통계 적용 시점이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지역 지정의 정량적 기준이 되는 소비자물가가 8월 들어 보합(서울) 내지 하락(경기도)했다가 9월 들어 서울이 0.3%, 경기도 0.4%로 크게 상승한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며 서울지역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6∼8월에 약 0.21%가 올랐지만, 7∼9월에는 약 0.55%로 상승폭이 커졌다.
경기도의 물가상승률은 6∼8월 0.25%지만 7∼9월은 0.63%에 달한다.
국토부는 6∼8월 통계를 적용해 이 기간 집값 변동률이 물가 상승률의 1.3배(서울 0.27%, 경기 0.32%)를 넘는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직전 3개월' 기준을 7∼9월로 바꾸면 규제지역 지정 대상이 되는 집값 변동률의 하한선이 물가 상승률의 1.3배인 서울 0.71%, 경기 0.82%로 높아진다.
이 경우 이번에 규제지역에 포함된 서울 중랑(0.58%)·강북(0.51%)·도봉(0.45%)·금천(0.56%)구 등 4곳과 경기 의왕(0.54%)·성남 중원(0.75%)·수원 장안(0.36%)·수원 팔달구(0.69%) 등 4곳 등 총 8곳이 물가 상승률 기준에 미달한다.
그러나 7∼9월 통계를 단순 적용하면 이들 8곳 외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곳은 더 있다.
연합뉴스가 이 기간의 집값과 물가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서울 은평구(0.78%)와 성남시 수정구(0.88%)는 조정대상지역 요건은 충족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서울 0.82%, 경기 0.94%)인 투기과열지구 지정 요건은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할 수는 있지만, 투기과열지구는 제외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지역 지정의 효과를 고려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동시에 지정했고,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3중 규제'로 꽁꽁 묶었다.
국토부가 6∼8월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 기준을 초과한 곳을 모두 규제지역으로 지정한 것도 아니다.
6∼8월 기준 화성시의 집값은 0.44% 올랐고, 광주시(0.40%), 군포시(0.34%)가 물가 상승률의 1.3배 기준을 충족했지만 규제지역에서 빠졌다.
"화성시와 군포시 등은 6∼8월 통계로 정량적 기준을 충족했지만, 9월 들어 이미 주간 변동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안정세를 보여 제외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현재 이번 규제지역에서 빠진 화성 동탄·구리 등지는 10·15대책 이후 거래가 늘고 가격이 상승하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 법정으로 가는 규제지역 논란…"낡은 지정 기준 손질해야"
천하람 의원은 이번 규제지역 지정은 위법행위라며 지난 11일 10·15대책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국민의힘도 당 차원에서 "위법한 행정처분이며 통계 조작"이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어 규제지역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현행 통계법을 고려하면 국토부의 위법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규제지역 심의에 참여한 한 주정심 위원은 "9·7 공급대책에 대한 실망과 집값 상승 기대감으로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늘어나자 당황한 정부가 규제지역 지정을 서두른 측면이 있다"면서도 "만약 공표되지 않은 통계를 민간 위원들에게 제공하며 심의를 맡긴다면 통계법 위반 논란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집값 통계조작' 논란으로 주택통 공무원들이 일제히 소송과 좌천 등 곤욕을 치르고 있는 국토부 입장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통계를 관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행 법에는 정략적 기준이 아닌 투기우려, 과열 등 '정성적 요건', 즉 정부 판단에 따라 지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돼 있다.
다만 심의 하루 이틀 뒤 새로운 최신 통계 활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대책 발표 시점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6·27 대출 규제 시점부터 규제지역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지정을 미루면서 실기한 측면이 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규제지역을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지정한 것 같다"며 "법 위반은 아니어도 강남이나 한강벨트에 비해 집값이 크게 오르지도 않았는데 아슬아슬하게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규제지역 지정 후 6개월마다 해제 여부를 검토해야 하고, 지자체장이 해제를 요구할 경우에는 40일 내 재검토를 해야 하는 만큼 규제지역 해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김윤덕 장관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당연히 해당 지역에 대한 규제지역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낡은 규제지역 지정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직전 3개월 물가상승률' 기준은 집값 변동과 무관하게 적용 시점에 따라 통계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지는 문제가 있다. 정량적 기준에 포함된 선택요건도 현 상황과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신규 분양물량이 급감한 상태에서 과거 청약 과열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청약 경쟁률'이나 '분양권 전매 거래량'만으로 과열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2022년 6월 규제지역 지정 기준 개선을 발표하고, 이듬해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3개의 규제지역을 '부동산관리지역'으로 통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거수기' 논란이 일고 있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정심은 민간 전문위원을 상대로 서면 심의로 진행되면서 정부안 그대로 통과되는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한 주정심 의원은 "정부가 보안을 강조하면서 대책 발표가 임박해서 안건의 내용을 보내고, 시간도 촉박해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주정심 방식을 손질해 내실을 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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