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돋보기] 캄보디아 사건이 던진 질문…AI 수사 현주소는
통신·금융·SNS 단서 연결해 범죄 지도 그리는 AI
AI 기술만으론 부족…국제 공조·인권 보호가 열쇠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피해 사건이 잇따르자 수사 및 외교 당국의 대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통적인 수사 기법만으로는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조직의 은밀한 연결고리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신 기록, 소셜미디어(SNS) 활동, 금융 거래 내역 등 파편화된 디지털 흔적을 모아 '범죄 네트워크 지도'를 구축하는 인공지능(AI) 분석 기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연 AI를 활용하면 캄보디아의 한국인 피해 사건과 같은 국제 수사의 속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 디지털 잔해,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
이번 캄보디아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자들이 남긴 디지털 '잔해'들이다.
메신저 대화 기록, SNS 게시물, 통신 메타데이터, 해외 송금 기록 등은 개별적으로는 의미가 작아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결합할 경우 조직의 실체를 확연히 드러낸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는 현장 확보된 디지털 단서를 얼마나 신속하게 연결하느냐가 사건 해결에 중요하다며 특히 국제 공조가 필수적인 사건일수록 디지털 포렌식 역량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AI 기반 네트워크 분석은 사람, 계정, 계좌 등을 '점'(노드)으로, 이들 사이의 관계(통화, 송금, 메시지)를 '선'(링크)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사회관계망분석(SNA) 기법과 기계학습을 접목하면 조직 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 자금 흐름의 허점 등을 빠르게 식별할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그래프 신경망(GNN)과 같은 첨단 기술이 단순 연결을 넘어 조직 내 수뇌부, 자금 관리책, 현장 행동대원 등 계층적 역할을 자동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자금 세탁부터 OSINT까지, 이미 실전 투입
AI 분석은 이미 다양한 수사 분야에서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암호화폐 거래 추적 전문 업체들이 거래 그래프를 분석해 수상한 자금 흐름을 수사기관에 제공 중이다.
전통 금융기관 역시 분산된 개체 정보를 하나로 연결·분석하는 엔티티(entity) 통합 분석 및 네트워크 분석 솔루션을 활용해 자금세탁 의심 사례를 선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외에도 기업용 포렌식 플랫폼들이 수사 보조 역할로 꾸준히 활용되면서 실무적 검증을 마쳤다.
공개된 정보원(OSINT)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SNS 게시물, 댓글, 구인 광고 글 등 공개된 텍스트 데이터를 AI가 처리해 인물, 장소, 시간 정보를 추출한다.
다국적 조직이 연루된 캄보디아 사건의 경우 AI가 현지 언어로 된 메시지를 신속히 번역하고 정황을 분석해 인적 정보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 가속화의 핵심 열쇠로 꼽힌다.
CCTV나 드론 영상에서 특정인의 움직임이나 집단 패턴을 감지하는 기술은 조직의 은신처를 추정하는 데 보조적인 증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AI 기술 도입이 곧 범죄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I 분석 결과는 입력 데이터의 오류나 누락에 취약하며 이는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 수사에 있어 해외 통신사나 금융기관의 핵심 서버 데이터에 접근해야 하는데 '형사사법공조'라는 길고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또한, AI가 제시한 결론의 근거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알고리즘 블랙박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으로 인해 특정 집단이나 인종이 부당하게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윤리적 딜레마도 있다.
게다가 범죄 조직들 역시 딥페이크 등 AI 기술을 동원해 허위 증거를 조작하거나 수사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AI 기반의 위·변조 감별 기술 개발 또한 수사기관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상태다.
◇ AI는 도구일 뿐…최종 결정은 수사관의 몫
수사 당국이나 전문가들은 AI를 '보조 도구' 이상의 역할로 규정하는 데 신중한 모습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인간이 놓치기 쉬운 연결고리를 제시하며 수사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고 작전을 결정하는 최종 판단은 결국 인간 수사관의 전문성에 달렸다는 것이다.
AI 분석 결과를 법정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 보관, 활용 과정 전반에 걸친 법적 정당성과 투명한 로그 관리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캄보디아 피해 사례처럼 국경을 넘는 사건일수록 한국 수사기관과 현지 당국 간의 투명하고 신속한 협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AI 분석의 성과를 실질적인 검거로 연결하려면 데이터 공유를 위한 국제 공조의 법적 기반과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검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캄보디아 사건은 AI와 같은 첨단 기술의 도입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제도와 신뢰 그리고 인권 보호 장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결합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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