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국이통사 로밍 데이터·문자 차단…관광객 폰 '먹통'
"드론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조치"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가 외국 이동통신사 이용자의 로밍 서비스 일부를 제한해 관광, 출장 등 단기로 러시아를 찾은 외국인이 불편을 겪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 매체 폰탄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를 방문한 외국인의 해외 심(SIM) 카드나 이심(eSIM) 로밍을 통한 인터넷 데이터 접속과 문자메시지 사용이 지난 6일부터 막혔다.
이는 러시아 통신사들이 해외 심카드의 인터넷 데이터와 문자를 24시간 동안 차단하는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러시아 통신당국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해외 심카드를 이용한 드론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나온다. 막수트 샤다예프 러시아 디지털개발부 장관은 지난 8월 "드론에 장착된 심카드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 심카드의 모바일 인터넷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며 "제한 기간은 국경을 넘은 드론의 평균 비행시간을 기준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폰탄카는 벨라루스 통신당국을 인용해 '24시간 제한'이 해외 심카드가 로밍으로 러시아 통신사 망에 처음 등록되는 시점부터 자동으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 통신사 알텔은 "러시아 정부 기관의 새로운 요구에 따른 조치"라며 데이터 접속과 문자사용이 24시간 이후 자동으로 복구되며 음성통화는 제한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발트국가 지역 매체 발틱뉴스네트워크(BNN)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통신당국도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유럽 통신사업자들이 러시아 로밍 서비스에 같은 제한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 당국은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한다"며 이 제한을 준수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게 된다고 전했다.
관광이나 출장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한국인도 로밍이 제한됐다. 이달 초 열흘간 모스크바를 여행하고 귀국한 박모 씨는 "카카오톡 등 간단한 데이터 메시지 수신도 안 돼서 답답했다. 혼자 다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응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겁났다"고 말했다.
그는 "알려진 것과 달리 음성통화도 계속 먹통이었다. 한국 통신사 고객센터에도 전화할 수 없었다"며 "공항에서 공공 와이파이를 이용하려 해도 문자로 네트워크 인증받아야 해 무용지물이었다. 지나가던 현지인에게 휴대용 핫스폿을 잠깐 연결해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급한 용무를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관련 정보 공유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런 제한이 새로 도입된 사실을 안내받지 못한 채 한국에서 비싼 로밍 요금제에 가입하고 왔다가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러시아에 장기 체류 중인 사람도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은행 본인인증용 문자 등을 수신하기 위해 한국 통신사 서비스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달 초 이후 문자 수신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 조치가 24시간 이후 풀리더라도, 새로운 러시아 통신망에 연결되면 다시 24시간 제한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로밍 통신사를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 사이에서는 "로밍을 켠 지 24시간이 지나도 며칠째 계속 먹통"이라는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다.
이 규제는 중국, 베트남 등 러시아와 우호적인 국가 출신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폰탄카는 중국 관광객의 경우 문자 인증 후 해외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밍 먹통으로 현금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현지 심카드를 구매하기도 쉽지 않다. 러시아는 올해 하반기부터 자국 심카드를 구매하는 외국인에게 생체 등록을 요구한다. 생체등록을 하려면 며칠에 걸쳐 여권 공증, 정부 서비스(고스우슬르기) 등록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 관광·통신 업계에서는 정부에 외국인 단기 방문자를 위한 일회용 심카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폰탄카는 전했다.
abb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