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2년] "삶이 박탈됐다, 이처럼 파괴적 전쟁 처음"…가자 주민 인터뷰
연합뉴스와 화상 인터뷰…마른 콩 등으로 겨우 하루 두끼, 몸무게 20㎏ 빠져
"아이들에 이유식·기저귀도 줄수없어…땔감없어 종이·나일론시트 등 태워"
트럼프에 '학살 중단' 편지 보내며 희망의 끈…"한국의 발전은 우리의 모델"
(텔아비브=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학살당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야말로 트라우마입니다."
2년간 이어진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가자지구 현지 주민 아예드 아부라마단(63)은 1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아기들에게 기저귀도, 이유식도, 사탕도 가져다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몇번의 전화 연결 시도 끝에 어렵사리 화상으로 마주한 그의 모습은 프로필 사진보다 훨씬 핼쑥했다.
그가 앉은 곳의 침침한 조명이 자주 깜빡거리며 열악한 환경을 실감나게 했다.
아부라마단은 "몸무게가 예전보다 15∼20㎏ 정도 줄었다"며 "하루에 두 끼 정도 먹는데 마른 콩이 대부분이고 고기나 계란 같은 단백질이나 채소, 과일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자시티에 살던 아부라마단은 지난달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시작하며 밤낮없이 공습을 퍼붓자 중부 자와이다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번 전쟁의 첫 번째 피란생활은 올 초 휴전까지 1년 넘게 이어졌고, 이번에는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아부라마단은 "폭격은 시장, 학교, 사무실 건물, 거리 등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며 웬만하면 외출을 자제한다고 한다.
그는 "인구의 90%가 텐트에 살면서 잠자고, 요리하고, 먹고, 용변을 보는 것까지 같은 공간에서 해결하고 있다"며 "전기도 연료도 부족해 음식을 하려면 불을 때야 하는데, 땔감도 없다보니 종이나 나일론 시트 같은 것도 태운다"고 전했다.
또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파괴적인 전쟁을 겪은 적은 없다"며 "이스라엘 고위층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짐승들'(human animals)이라고 부르며 가자를 살지 못할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천200여명을 살해하자 보복 군사작전에 돌입한 요아브 갈란트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우리는 인간 짐승들과 싸우고 있다"며 적개심으로 가득찬 표현을 썼다. 현재 가자지구 쪽 사망자는 6만6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부라마단은 하마스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자 머리가 복잡한 듯 한참을 주저했다.
아부라마단은 "나는 폭력을 원하지 않지만, '저항'은 유엔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해방의 수단"이라며 "하마스 등 파벌이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일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나는 무장 파벌의 존재를 지지하지 않으며, 하나의 경찰과 하나의 군대를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평화적인 절차를 밟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아부라마단이 괴로운 나날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가족 덕분이다. 그는 튀르키예로 유학간 막내딸 제이나와 하루에도 여러번씩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다며 미소지었다.
제이나가 2023년 8월 방학 때 가자지구로 놀러온 이후로는 직접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서도, 가자지구에서 어렵게 아이를 지켜내려는 부모들을 보면 자신은 불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오랜 전쟁으로 가자지구 전역이 초토화되면서 가자상공회의소 회장인 아부라마단의 활동도 180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상업, 산업, 농업계 등 여러 경제 분야 활성화를 위해 박람회를 개최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분배하는 등 주민 생존을 위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아부라마단은 "얼마 전 나를 포함한 20명이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량 학살을 멈춰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가 '평화 계획'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이를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휴전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며 "가자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멈추고, 휴전이 이뤄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요즘 아부라마단은 전후 재건과 관련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에서 경영하던 개인 농장을 정상화하는 것도 과제다.
그는 "5억톤에 달하는 엄청난 콘크리트 잔해가 가장 큰 문제인데, 이걸 치우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바다에 매립지를 만들거나 항구를 조성하는 데에 잔해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아부라마단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계속 비참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고, 협상을 지난하게 끌고 가려고 하겠지만 우리 사람들은 회복력이 강하다"며 "불탄 잿더미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부라마단은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네타냐후의 얼굴이 있는 포스터와 함께 신발을 늘어놓은 모습을 영상으로 본 기억이 나는데, 한국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11월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희생자 추모 시위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아부라마단은 "우리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산업 발전과 '저항'의 측면에서 우리의 역할모델로 여겨진다"며 "우리가 언젠가 한국처럼 되기를,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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