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시장 중심' 환율정책 합의…"경쟁우위 목적 조작 없다"
유리한 무역조건 위해 통화 조작하지 않기로…"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해소"
정부, 모니터링 대상에 '안정' 추가…'한미 통화스와프 포석' 해석도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한미 재무당국이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긴다는 내용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이 과도하게 불안할 때만 고려하고 무역 경쟁을 위한 통화 가치 조작은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1일 이런 내용의 환율정책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미 간 환율정책은 지난 4월 미국 측의 요청으로 '2+2'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됐지만 관세 협상과 구분해 재무 당국 간 고위·실무급 협의에서 논의돼왔다.
◇ 외환시장 개입은 양방향 모두…최종안서 '국민연금' 언급 빠져
한미 재무당국은 이날 합의문에서 "효과적인 국제 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수출 호조로 원화 수요가 늘어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가격이 상승해 무역수지 악화 요인이 된다. 결국 원화 수요는 다시 줄고 원화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무역수지가 적자 혹은 흑자의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변동환율제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런 '국제수지의 조정' 효과를 방해할 수 있는 인위적인 통화가치 조작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한미 당국 간 합의의 취지다.
구체적으로 '거시건전성 또는 자본 이동과 관련한 조치'도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단기 투자 목적의 이른바 '핫머니'의 환율시장 교란을 막기 위한 조치도 '경쟁적 목적', 즉 물건을 싸게 팔기 위한 환율 조작에 동원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정부투자기관의 해외투자도 위험 조정이나 투자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우리 측에서 우려했던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관련 언급은 합의문에서 빠졌다. 당초 미국 측이 제시한 초안에는 포함됐지만 정부 측의 설명과 설득으로 최종안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월 의회에 보고한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를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언급했다.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를 '시장 개입'의 사례로 지목한 것이다.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이때 개입은 '환율의 방향과 관계없이 대칭적'이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통화가치 절하·절상 중 어느 한쪽의 경우에만 개입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현재 분기별로 공개되는 시장 안정 조치는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월별로 미국 재무부에 공유하기로 했다.
월별 외환보유액과 선물환 포지션은 국제통화기금(IMF) 양식에 따라 공개한다. 이는 이미 정부가 이행 중인 내용이다.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 구성 정보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양국 재무당국 간 긴밀한 소통과 신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정부 "한미 합의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해소"
이번 합의 내용은 현재 정부의 환율 정책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기재부의 전반적인 평가다.
정부는 한미 재무당국이 환율정책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모니터링 대상에 외환시장 '안정'을 추가했다는 점을 의미 있는 성과로 꼽았다. 최근 미국과 유사한 환율정책 합의를 한 일본·스위스의 합의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하기 위한 정부의 중장기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3천500억달러 투자금'을 두고 양국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선불'이라며 현금 지급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무제한 통화스와프 등을 필요 조건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번 합의로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가 사실상 해소됐다는 점도 의미 있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의회에 보고한 환율보고서에서 앞으로 교역국의 환율 정책과 관행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겠다며 사실상 정량 평가보다 '정성 평가'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3가지 환율조작국 요건 중 시장 개입 요건(12개월 중 최소 8개월간 GDP의 2% 이상 달러 순매수)에 해당하지 않아 지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와 무관하게 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정부 안팎에서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정상적인 환율개입을 트집 잡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최근 미국과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이런 우려는 더 커졌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환율조작국 우려는 덜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합의문은 미국과 환율정책의 기준을 서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지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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