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평화구상으로 '올드보이' 토니 블레어 주목

입력 2025-09-30 09:50
가자 평화구상으로 '올드보이' 토니 블레어 주목

재건에 역할 기대…"과도 통치기구 수장 될 수도"

당사국과 두루 친분…일부 불신 속 트럼프와 한배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토니 블레어(72) 전 영국 총리가 그간 중동 지역의 이해 관계자들과 두루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가자지구 재건에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블레어 전 총리가 주장해 온 가자지구 과도 통치기구가 설립되면 그가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레어는 '가자 국제 과도 기구'(GITA·Gaza International Transitional Authority)라는 유엔 위임 행정기구를 설립하고 다국적 치안유지군의 지원을 받아 가자지구를 안정화시키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의 기자회견에 앞서서 가자지구에 대한 구상을 내놓자 블레어는 성명서를 내고 이 제안이 "대담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레어는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서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이 "2년간 벌어진 전쟁, 참상, 고통을 끝낼 수 있는 확률이 가장 큰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블레어가 몇 달간에 걸쳐 만들어 올해 여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 가자지구 평화 및 재건 계획이 트럼프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레어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내고 물러난 직후 유엔,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로 구성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과정 협의체 '쿼텟'의 특사를 맡아 2015년까지 일했다.

블레어가 이 기구 특사로 임명된 것은 처음부터 논란이 있었으며, 러시아는 처음에는 반대했다가 나중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가 영국 총리로 재임할 때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을 열렬히 지지하고 제2차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의 영국군 해외 파병을 통해 협조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돈독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그를 불신하는 이들이 많았다.

더타임스는 블레어 전 총리가 쿼텟 특사로 재임하는 동안 '두 국가 해법'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독립국가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정치적·경제적 기관들을 만들도록 도와줬어야 하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쿼텟 특사 자리에서 물러난 블레어는 2016년에 차린 싱크탱크 겸 정치 컨설팅 기관 '글로벌 변화를 위한 토니 블레어 연구소'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의 아랍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블레어는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지시한 증거가 드러난 후에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에 긍정적 의미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취지로 변명해왔다.

블레어는 비난을 감수해가며 유지해 온 이런 관계 덕택에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기관이 설립될 경우 그 책임자로 적합한 인물로 떠올랐다.

가자지구 재건에 필수적인 자금을 대게 될 페르시아만 지역의 부유한 브로커들과 친분이 깊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친분이 깊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신뢰하는 인사이며, PA와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더타임스는 블레어가 가자지구 과도 통치 기구의 수장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위험이 있다며, 그가 이 직책을 맡을 경우 예측불허의 언행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사실상 한배를 타게 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2월 가자지구 주민 210만명 모두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소유하는 휴양지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폐기된 것으로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더타임스는 설명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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