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비참한지 세상에 알려달라"…가자시티 처절한 피난길

입력 2025-09-19 11:42
"얼마나 비참한지 세상에 알려달라"…가자시티 처절한 피난길

낡은 트럭에 살림살이·피란민 빼곡, 맨발 탈출도…가자 처지 웅변한 NYT 사진

지난달 가자에서 25만명 이상 이주…'인도주의 구역'조차 열악

이스라엘 장관 "부동산 대박" 부동산 개발 눈독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낡은 트럭 위에는 매트리스를 비롯해 담요, 옷가지, 주방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위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앉아 있다.

물통이 줄줄이 매달린 트럭 옆으로는 돈이 없어 앉을 자리를 얻지 못한 두 명의 남성이 각자 흰색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한 피란길 풍경을 한 장의 사진으로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낡은 트럭에 살림살이를 몽땅 싣고 미래를 알 수 없는 남쪽으로 향하는 모습은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트럭에 탄 한 여성은 기자들을 향해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지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게 우리를 찍어달라"고 호소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5일 가자시티에 대한 지상 작전을 개시한 이후 가자시티에 집중포화를 가하고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25만명 이상이 가자시티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공세가 강화된 이후로는 매일 수만 명이 탈출하고 있다. 유엔 관계자는 이번 주 초 72시간 동안에만 약 6만명이 피난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당국은 대피 명령에 따라 가자시티를 떠난 민간인 수가 45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지난 18일 가자지구의 좁은 해안도로에는 불타는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피란 행렬이 밀려들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알라시드 해안도로를 민간인들이 대피할 수 있는 통로로 지정했지만, 도로는 짐을 실은 트럭과 피란민들로 가득 차 극심한 정체에 시달렸다. 교통비가 치솟으면서 일부 사람들은 짐과 어린 자녀를 짊어지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야세르 살레는 "우리는 맨발로 해변 쪽 거리에서 잠을 자러 갈 것"이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의 동부 교외 지역을 장악했다. 최근에는 셰이크 라드완과 텔 알하와 지역까지 진입해 남은 인구 대부분이 머무는 중부와 서부 지역으로 진격할 태세를 갖췄다.

한때 번화했던 가자시티의 많은 지역은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7일 가자시티 탈출을 장려하기 위해 가자지구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두 번째 대피로를 개방했다.

이 길을 이용한 샤디 자와드는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사방에 인파가 가득했고, 폭발음이 들렸고, 사람들이 짐을 든 채 걷는 동안 여자와 남자들이 울고 비명을 질렀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주민들에게 남부의 지정된 '인도주의 구역'으로 대피하라고 촉구하는 전단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공보 담당자인 로잘리아 볼렌은 "사람들이 가도록 명령받은 가자 남부 지역은 모래 언덕 지대로, 인도적 도움이 필요한 피란민 가족을 수용하기에 부적절하고, 준비되지 않았으며,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가자 주민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절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재무장관의 발언은 가자시티의 비극적인 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지난 1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도시 재생 관련 콘퍼런스에 참여해 가자지구를 "부동산 대박"이라고 언급하며 "도시 재생의 첫 단계인 철거는 이미 끝났다. 이제 우리는 건설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잿더미로 변한 가자지구가 이스라엘 재무장관의 눈에는 엄청난 개발이익을 안겨줄 노다지로 보이는 것이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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