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원전 없다' 시사한 李…원전업계 "제2 탈원전" 우려도(종합)

입력 2025-09-11 15:58
'새 원전 없다' 시사한 李…원전업계 "제2 탈원전" 우려도(종합)

'원전보류'·'신재생 확충'에 확정된 11차 전기본 대폭 수정 예고

올해 원전부지 선정도 무기한 보류…전문가 "새 원전 투입 늦으면 전력수급 영향"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오예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기존 원전은 '합리적 에너지 믹스' 차원에서 계속 쓰겠지만, 정부 차원의 계획이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곧 출범할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이미 정부 계획으로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방향을 시사했다.

원전 업계와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사실상 새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는 '탈원전 정책' 기조로 선회하면서 원전 산업이 다시 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원전을 짓기) 시작해도 10년 지나 지을까 말까인데 그게 대책인가"라면서 "안전성(이 확보되고) 부지가 있으면 (건설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원래 계획대로 하면 된다"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부지 선정부터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김성환 장관도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4∼2038년 적용)에 반영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과 관련해 "기존 원전은 안전을 담보로 계속 (수명을) 연장해 쓰더라도 원전을 신규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신규 원전) 의견은 최종적으로 12차 전기본에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업계는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이런 발언이 지난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 담긴 신규 원전 2기와 첫 SMR 건설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재논의하겠다는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한다.

15년간 적용되는 전기본은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 설비를 어떻게 채울지 계획을 담은 문서로 2년에 한 번 새로 업데이트된다.

11차 전기본은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 반도체 등 첨단산업 발전,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전기화 전환 등 요인으로 2038년 전력 수요가 현 수준보다 약 30% 급증할 것으로 보고 총 2.8GW(기가와트) 설비용량 원전 2기를 2037∼2038년 도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후 1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마련됐다. 또한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SMR이 처음으로 0.7GW 규모로 들어서게 될 예정이었다.

아울러 탄소중립 전환 흐름에 발맞춰 2023년 30GW이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을 2030년과 2038년 각각 78GW, 121.9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정국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의 강한 요구로 당초 정부 원안 대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상향 조정되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3기에서 2기로 축소됐다.

정부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국정 과제인 '재생에너지 대전환' 추진 차원에서 11차 전기본 대비 재생에너지 확충 속도를 올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결국 신규 원전 건설은 재검토하고, 재생에너지 확충은 당초 계획보다 더욱 서두르기로 하면서 확정된 11차 전기본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우리나라의 장기 전력 수급 계획은 새로 출범할 기후에너지환경부 주도로 작성될 12차 전기본(2026∼2040년)에서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12차 전기본은 올해 하반기 공식 논의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신규 원전 관련 발언으로 당초 올해 시작될 전망이던 신규 원전 부지 선정 절차는 12차 전기본 확정 뒤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원자력계는 신규 원전 건설 재검토가 '제2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자력학회는 지난 9일 "인공지능(AI) 혁명, 데이터센터 확충,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국가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안정적인 대규모 기저 전력 확보는 국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전 건설·운영을 환경 규제 중심의 부처에 맡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원자력 산업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심인섭 한국수력원자력 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김성환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와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며 "12차 전기본에 대형 원전이 빠지고 재생 에너지를 늘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계획대로 올해 원전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계획된 2038년에 신규 원전을 건설해 가동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이미 확정된 계획을 사실상 폐기하고 수년간 결정을 미룬다면 AI발 전력수요 급증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안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스리마일 원전을 재가동해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기로 했고,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멈춘 원전을 재가동하는 7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내놓는 등 세계적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라며 "이미 확정돼 부지 선정만 남은 단계에서 다시 공론화하면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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